오랜 전부터 혈압 약을 복용 중인 60대 여성이 서울시내 압구정동에 있는 한 내과병원을 찾았다. 가까운 후배가 추천한 곳이다. 그 동안 다니던 병원의 의사선생님이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다닐 새 개인 병원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는 불과 2주 전에 종합병원에서 건강검진을 한 바 있다. 당연히 건강검진결과도 지참했다. 이 내과병원의 A 의사는 그녀의 설명을 들으며 종합검진결과를 들여다 보면서 뭔가 메모도 했다. 이어진 그녀와 A 의사의 대화를 재구성해 본다.A 의사:  “일단 피검사와 복부 초음파 검사부터 하겠습니다.”그녀:  “예!? 피검사, 초음파 검사를요? 지금 드린 종합병원 검진결과에 자세히 나와 있는데요?”A 의사:  (약간 언짢은 목소리로) “필요하니까 하자는 것이지요.” 그녀는 눈치도 없이 질문을 가장한 항변(?)을 늘어놓는다.그녀:  “아침에 빵도 몇 조각 먹고 커피까지 마시고 왔는데…공복이 아닌데도 괜찮은가요?”A 의사는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 했다. 그녀는 당장 뛰쳐나오고 싶었다. 그러나 소개해 준 후배 얼굴이 떠올랐다. 마지못해 두 가지 검사를 모두 받았다. A 의사는 검사 후 고혈압과 함께 친절하게도 콜레스트롤 약까지 처방해 주었다. 그녀는 진료비와 검사비로 거금(?) 18만 6,300원을 지불했다. 그 순간 그 돈으로 대형할인점에서 푸짐하게 장을 보고 나오는 자신의 모습이 오버랩 됐다. 그녀는 2주 전 종합병원 건강검진결과 상담 때 콜레스트롤 수치가 좋아졌다는 설명을 들었었다. 따라서 A 의사의 검사결과는 종합병원의 것과 정반대였다. 그녀는 아무래도 의아해 다음 날 종합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콜레스트롤 약이 전혀 필요 없단다. 또 혈압과 콜레스트롤 측정을 위한 피검사는 공복에 하는 것이란다. 누가 의술(醫術)을 인술(仁術)이라고 했던가. 그녀는 ‘양심과 위엄으로서 의술을 베푼다’는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새삼 공허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결국 다른 내과를 찾았다. 물론 종합병원 검진결과도 가지고 갔다. 이 병원 B 의사선생님은 종합병원 검진결과를 살펴본 뒤 “좋은데요” 라고 말하며 혈압 약만 복용하면 된다고 했다.그녀는 평소에 의사는 물론 젊은 간호사들도 항상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압구정동 내과를 다녀온 뒤부터는 의사에 대한 호칭이 슬그머니 달라졌다. ‘의사’와 ‘의사선생님’으로 말이다. 그녀는 바로 내 아내다.우리는 3년여 전 지금 주소로 이사온 뒤부터 집 앞 치과병원을 이용한다. 이 병원 의사선생님은 보철을 하는 과정이 참으로 길고 신중하다. 비용도 매우 합리적이다. 보철을 임시로 하고 마무리를 할 때까지 몇 개월 또는 일년 가까이 중간 점검만 한다. 그래야 오래오래 탈이 없단다. 그리고 점검 때마다 필요하면 잇몸도 치료하고 치석도 제거해 준다.처음에는 점검 기간이 너무 길어 걱정도 되었다. 혹시 한꺼번에 진료비가 많이 나오는 것이나 아닌지…… 그러나 기우였다. 이 의사선생님은 점검과정에 대해서는 일절 비용을 청구하지 않는다. 결국 귀찮고 번거로워 치료 중인 두 개 가운데 어금니 한 개는 내가 애원하다시피 하여 6개월 만에 마무리하고 나머지 한 개를 위해 아직도 8개월 째 다니고 있다. 덕분에 스케일링은 계속 공짜다. 우리 부부는 이 치과를 다녀 올 때마다 왠지 기분이 좋다. 아마 치료비가 훨씬 더 나오더라도 당연하게 받아들일 것 같다. 그 의사선생님을 믿기 때문이다.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사회, 우리가 꼭 이룩해야 할 선진사회 모습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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