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들은 되찾았으나 빼앗긴 역사는 어떻게 바로잡을까? 우리지역에서 드문 야당출신 초선인 강민구 수성구의원이 대구시 수성들판과 수성못의 빼앗긴 역사를 되찾는 데 구슬땀을 흘리고 있어 화제다. 수성들과 수성못은 대구출신 민족시인 이상화 선생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기념해 그의 시비가 새겨져 있는 곳. 지난 7월 폭염의 날씨 속에 강민구의원의 발걸음은 시비공원을 출발해 수성못과 수성들을 내려다보는 법이산을 향했다. ‘水崎林太郞(미즈사키린타로) 묘역’ 안내판이 법이산 산책로 입구와 묘지 앞 등 군데군데 붙어 있다. 한일친선교류회와 수성구가 공동 제작한 듯한 안내판에는 “수성못을 축조한 고 水崎林太郞 공 묘역”이란 주제 아래 “水崎林太郞선생님은 일본에서 출생하여...개척농민으로 대구에 와, 조선총독을 직접 면담 1만2천엔의 공사비를 지원 받아 수성못을 완공하여 수성들을 항상 풍요롭게 하신 분”으로 씌어 있다.‘이건 아니다!’고 느낀 강민구 의원은 이마에 연신 흐르는 땀방울도 개의치 않고, 주변 모든 구조물들을 낱낱이 촬영했다. 방명록을 꼼꼼히 살펴보았고, 오래된 묘석도 면밀히 관찰했다. 근대화란 미명 하에 온갖 수탈구조를 만들었다고 알고 있었던 일제의 역사가 해방 69주년인 올해에도 버젓이 미화 선전되고 있다는데 전율이 느껴졌다.그러나 현재 그는 현역 구의원 신분이다. 586세대로서 25년 전처럼 혈기왕성만을 내세울 수 없었다. 조용히 의원회관 3층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 온 강민구의원. 조사해온 자료를 토대로 자신의 페이스북에 포스팅을 했다. 페이스북에는 다양한 의견들과 정보들이 쏟아져 강의원을 도왔다. 요지는 근래 들어 새롭게 조명된 미즈사키린타로씨가 한일교류를 위한 가교역할로 미화됐다는 것. 강의원은 두 가지 과제를 탐구했다. 첫째는 설사 그가 대단한 일을 했다고 하더라도 극존칭으로 묘사됐다는 점. 둘째는 일제 이전의 역사적 고증과 당시의 더욱 구체적 상황 확인 없이 그가 영웅시 돼 일제의 강점을 미화하는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첫 번째 연구 과제는 곧바로 반응을 얻었다. 인터넷과 지역 유력 언론에서 강의원의 연구를 지면에 게재해 관심을 보였다. 수성구청 차원에서도 연구가 끝나면 충분히 수정할 수 있다는 신호를 받았다. 그러나 두 번째 과제는 쉬운 일이 아니다. 조선시대의 흔치않은 지리지를 찾아 해독해야한다. 역시 흔치 않은 일제 강점기의 자료들도 찾아야하고, 그 자료가 혹 친일적 시각에서 왜곡되지는 않았는지 전문가의 고증도 받아야 한다. 강의원의 이제까지의 탐구에서 미즈사키씨는 수성못을 ‘구축’이 아니라 ‘증축’했다는 것, 물의 ‘무상제공’이 아니라 ‘수세’를 받았다는 것, 일본의 ‘동이장급’의 인사가 꽤 높은 ‘관직’에 등용됐다는 것 등이 새롭게 드러났다. 앞으로도 강의원은 관련 자료와 사료들을 더 많이 수집해 분석하고, 향토사학계는 물론 흥사단 등 관련기관도 방문해 진실에 접근해가겠다는 계획이다. 역사를 바로 쓰기도 어렵지만, 잘못 써진 역사를 바로잡기는 더더욱 어려운 법이다. 또 어느 사학자의 말처럼  ‘인사가 역사’ 즉 한사람의 삶이 얽혀서 만인의 역사를 구성하게 된다. 강민구 초선 구의원의 연구 활동은 올 8.15광복절을 지나면서 ‘올바른 역사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지며, 또 다른 역사를 써내려가는 새로운 물줄기가 될듯하다.  강병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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