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경남지사의 징역 2년형을 확정한 지난주 대법원 판결로 정치권이 거센 후폭풍에 휩싸였다. 김 전 지사는 현직 박탈과 함께 수감됐고 앞으로 7년간 선거에 나설 수 없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하는 김 전 지사에 대한 ‘정치적 사망 선고’는 이전투구 양상으로 치닫는 더불어민주당 경선 판도와 맞물려 ‘친문(親文) 적자’ 쟁탈전을 뜨겁게 달굴 전망이다. 여기에 특검 연장론과 정권의 정통성 시비까지 불거지면서 이번 판결의 파급효과가 어디까지 미칠지 가늠하기 어려운 형국이다.김 전 지사의 혐의는 2016년 12월~2018년 2월까지 포털사이트 기사 댓글 순위를 조작한 김동원(필명 드루킹) 씨와의 공모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김 전 지사가 2016년 11월 댓글 조작 프로그램 ‘킹크랩’의 시연을 참관한 사실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됐다”고 밝혔다. 킹크랩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는 김 전 지사의 주장을 일축하고, 기사 링크를 드루킹에게 보낸 후 결과를 보고받는 등 댓글 조작을 공모했다는 1심과 2심 판단을 재확인한 것이다.이쯤 되면 고개를 수그릴 법도 하거늘 김 전 지사는 그럴 기색이 전혀 아니다. 판결이 나오자 “진실은 아무리 멀리 던져도 반드시 돌아온다”며 뜬금없이 진실을 들먹였다. 전후 사정 모르고 들으면 영락없이 억울한 사람의 애타는 호소다. 이전에 경험한 적이 없는 상황 또는 장면인데도 언젠가 경험한 것처럼 느껴지는 데자뷔가 바로 이런 경우다. 빼도 박도 못하는 물증으로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고도 천연덕스레 무죄를 주장하는 한명숙 전 총리가 김 전 지사에겐 훌륭한 본보기였던 모양이다.요즈음은 이런 일이 하도 잦아 아예 시대의 대세로 자리 잡은 느낌이다. 비리가 들통 나면 일단 버티다가도 증거가 나오면 꼬리를 내리고 용서를 비는 게 상례다. 하지만 이 정권 인사들은 증거와 정황이 아무리 명명백백해도 끝까지 우기고, 한술 더 떠 개혁, 정의, 공정 같은 고상한 가치로 포장하려 든다. 가족까지 총동원해 온갖 파렴치 범죄를 저지르고도 ‘검찰 개혁’의 희생양인 양 시늉하는 조국 전 법무장관이나 아들의 ‘황제 휴가’와 관련한 서울동부지검의 수사 결과를 깡그리 짓밟고 국회에서 27번이나 거짓말을 되뇐 추미애 전 법무장관 등이 그런 철면피의 대명사 격이다.민주당 대선주자들이 “김 지사의 진정성” “진실의 부메랑” “통탄” 운운하며 판결 불복을 앞 다퉈 외친 데에는 복잡해진 경선 셈법과 더불어 그들 마음속에 도사린 ‘뻔뻔 본능’이 작용했을 게다. 내 편 지키기 위해서라면 사법부 무시쯤은 일도 아니라는 독선의 극치다. 정치 편향으로 악명 높은 친여(親與) 방송인이 재판부를 향해 “개놈XX들”이라는 육두문자를 날리고 여당 중진 의원이 “맞습니다”라며 맞장구치는 몹쓸 작태가 버젓이 방송을 타는 것도 그래서다. 이번 상고심의 주심이 ‘정권 하수인’ 소리를 듣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추천으로 문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이란 사실에는 눈을 질끈 감는다.드루킹 사태는 정권의 정통성 문제까지 얽히면서 계속 확산될 기세다. 대선후보 여론조사 1위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드루킹 사건을 “국정원 댓글 사건과 비교할 수 없는 규모의 여론 조작”으로 규정하고, 그 수혜자인 문 대통령이 “직접 답하고 책임져야 한다”며 특검 연장을 요구했다. 더 이상의 논쟁은 무의미하다. 문 후보가 자신의 수행비서인 김 전 지사의 공모를 몰랐다는 걸 누가 믿겠나. 민주당 경선 당시 문 후보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경인선(경제도 사람이 먼저다)’을 여러 번 언급한 것도 빠뜨릴 수 없는 증거다. 경인선은 드루킹이 주도한 문 후보 지지 모임이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여론 조작에는 가차없이 철퇴를 내려야 한다. 드루킹 사건이 ‘꼬리(김 전 지사) 자르기’로 끝나선 안 되는 이유다. 허익범 특검은 여론 조작이 “지난 대선에 영향을 줬다고 본다”며 “지금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 않고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내년 대선에서 같은 범죄가 재연되지 않도록 특검을 연장해 몸통을 가려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