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막힌 여야 대치정국을 가장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는 한 사람이 아마도 박근혜 대통령일 듯 싶다. 하반기 핵심 국정운영 과제로 일자리 창출과 경제활성화 등 민생현안 해결에 올인하겠다고 거듭 강조해 온 박 대통령으로선 지금의 국회 상황이 답답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8·15 경축사를 통해 "집권 1년 전반기가 국정운영의 틀을 설계하고 만드는 과정이었다면 이젠 구체적인 실행과 성과를 통해 새로운 대한민국의 모습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간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와 국무회의를 통해 `국정과제의 속도감 있는 추진`과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내달라`는 등의 주문을 수석비서관들과 국무위원들에게 강조해 왔다. 박 대통령의 하반기 구상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우선 일자리 창출과 경제활성화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내년도 예산안 처리도 발등의 불이다. 하지만 여야가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국군사이버사령부 등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문제에 사활을 걸면서 각종 법안 및 예산안 처리는 뒷전으로 밀리는 모양새다. 여기에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실종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 결과를 놓고도 여야는 엇갈린 해석을 내놓으며 공방을 이어갈 태세다. 고질적인 인사문제도 박 대통령의 발목을 잡고 있다. 민주당은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자진사퇴해야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와 김진태 검찰총장 후보자의 임명에 동의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민주당은 "정국해법의 열쇠를 박 대통령이 쥐고 있다"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으나, 지금의 정국을 돌파할 마땅한 카드가 없다는 것이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고민이다. 청와대는 민주당이 요구하는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특별검사 도입, 국가정보원 개혁특위 구성 등에 대해 "이미 답변한 사안"이라며 이같은 요구 자체를 정치공세로 바라보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과 관련해서는 사법당국의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박 대통령이 약속했다"면서 "국정원 개혁도 진행 중이고 그 누구보다 박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다"고 했다. 새누리당의 한 친박(박근혜)계 의원도 "대통령이 더 이상 무슨 얘기를 할 수 있겠느냐"며 "민주당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고자 민생 관련 법안과 예산안을 볼모로 흥정에 나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여야가 협상과 타협을 통한 정치력을 상실하면서 청와대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야당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일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박 대통령이 야당을 협상장으로 끌어들일 선물을 줄 가능성도 희박해 보인다. 여권과 청와대 안팎에선 오는 18일로 예정된 박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에서도 민주당이 요구하는 특검이나 특위 구성에 대한 답변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오히려 그동안 박 대통령이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이나 국정원 개혁에 대해 얘기해 왔던 논지를 더욱 부각시켜 여론의 지지를 더욱 확고히 할 계기로 삼을 개연성이 높다. 아울러 박 대통령은 부동산 관련 법안, 외국인투자촉진법 등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과 내년도 예산안 처리를 아무 조건없이 신속히 처리해 줄 것을 다시 한번 간곡히 당부할 것으로도 보인다. 이는 새 정부가 추진하려는 국정과제들이 국회에 가로막혀 추동력을 잃고 있다는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또한 청와대가 여론의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기회일 수 있다. 다만 청와대는 여야 대치국면의 장기화로 인해 그 폐단이 현실화 될 경우 책임 소재가 정치권 뿐 아니라 야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박 대통령의 불통과 독선으로 옮겨 붙지는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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