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 - 뉴시스 논설고문   “재중동포(조선족)나 중국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좋아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며칠 전 송년모임에서 만난 한 중국전문가가 우리나라의 다문화사회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이렇게 묻더니 “우리나라가 법집행이 느슨해서 좋아한답니다”고 답을 가르쳐줬다. 민주국가여서라거나 경제가 발전해서가 아니라 ‘법이 관대’해서 한국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었다. 중국에서는 처벌이 두려워 감히 시도해볼 생각도 못한 일들을 저질러볼 생각으로 한국에 오고, 또 그런 짓을 저지르다 걸려도 처벌이 중국만큼 엄하지 않아 기를 쓰고 한국에 오는 조선족이나 중국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는 이야기였다.  그 중국전문가가 그런 일들이 뭐라고 구체적으로 설명하진 않았는데도 열 댓명 남짓 그 자리에 모인 사람 모두가 한 순간에 그의 말이 이해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그 표정에는 ‘대한민국은 법치국가가 아니다라는 말이 이렇게도 표현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한국이 제대로 된 법치사회가 아니라는 건 아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교통질서와 관련된 것만 해도 매일 어디에서나 숱하게 경험할 수 있다. 속도위반 신호무시 무단횡단 불법유턴 꼬리물기 끼어들기 무단주차 불법정차 등등은 일상적으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불법행위들이다. 이런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로 인해 일어나는 다른 사람들의 피해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억지로 끼어들기를 해서 자신은 신호를 건너고, 멀쩡히 잘 가던 뒤차는 못 건너게 하는 사람들이 대표적이다. 퇴근길 강남대로 버스 정류장에 늘어선 택시들도 남의 시간과 기회를 빼앗는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다. 버스들이 제자리에 정차를 못하고, 출발할 때는 차선을 억지로 바꿔야 하는 바람에 넓은 대로는 수시로 막힌다. 죄책감 없이 이런 일을 저지르는 사람은 이밖에도 많다.  나는 우리 대한민국 경찰이 무엇보다도 이런 사소한(?)일부터 신경을 쓰기 시작한다면 대한민국이 더 일찍 진정한 법치국가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사소한 일을 어겨도 법에 따라 책임을 지고, 상응하는 처벌을 받는다는 인식이 사람들 머리에 자리를 잡는다면 그보다 더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가는 것이나 바늘도둑이 소도둑 되는 게 바로 처음 잘못을 저질렀을 때 바로잡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경찰이 잘못한 사람을 붙잡아도 검찰에서 놓여나기도 하고, 판사가 풀어주기도 해서 경찰의 힘든 노력을 헛일로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그래도 법치의 시작은 최일선 법집행기관인 경찰이 맡아야만 한다. 사소한 법규위반을 적발하고 처벌하는 건 경찰이 몫이기 때문이다.  철도노조의 불법파업이 3주째다. 민노총은 이 불법파업을 지휘한 철도노조 지도부를 체포하기 위해 경찰이 민노총 본부에 진입한 것에 반발, 28일 총파업에 들어간다고 예고했다.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벌써부터 불안하기만 하다. 파업 때문에 시간과 기회를 빼앗긴 많은 사람들이 발을 동동 구르거나 한숨짓는 모습이 그려진다.  한가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경찰이 사소한 범죄도 범죄이며 법을 어기면 엄한 처벌을 받는다는 의식을 생활 속에 뿌리 내리게 했더라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법을 무시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아무 거리낌 없이 교통법규를 위반토록 하는 것처럼 그보다 훨씬 큰 폐해를 낳는 불법파업도 같은 생각에서 비롯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경찰이 잘 해야 하는 것은 법 없이도 살 사람이 별로 없어서가 아니라 법이 없으면 죽을 사람이 더 많기 때문임도 알아야 한다. 법으로 지켜줘야 할 사람이 법으로 처단해야 할 사람보다 훨씬 더 많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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