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문현-언론인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 중세 패권을 잡고 있던 스페인의 펠리페 2세가 한때 그의 처제이자 구애의 대상이었던 영국 엘리자베스 1세와 숙명의 대결을 벌였던 ‘아르마다’해전은 세계 권력 이동의 단초가 됐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예상 밖 큰 승리로 끝난 이 해전은 대영제국 탄생의 초석이 됐기 때문이다.
그녀는 민간 상선과 해적선이 뒤섞인 해군임에도 임전무퇴의 자세, 함대 지휘자로 해적출신 프란시스 드레이크의 파격적 발탁과 철저한 준비로 스페인 ‘무적’ 함대를 상대로 세기의 반전을 이뤄냈다. 반면 펠리페 2세는 명예욕에 매몰되고 기존 명성에만 의존, 상대방을 과소평가한 탓에 뼈저린 패배를 당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롤 모델인 엘리자베스 1세는 역사적 대 반전을 계기로 영국 절대주의의 전성기를 열었다.
오는 19일은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 1주년이 되는 날이다. 사실상 집권 2년차로 접어드는 시점이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 미국 등 다섯 차례의 해외순방과 국내에서 외국 정상과의 열 차례 회동을 통해 총 26개국 정상들과 30차례의 공식 정상회담을 가지며 활발한 세일즈 외교를 펼쳤다. 대북관계도 일관된 정책기조를 펴며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그 외의 국정에서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국민행복시대를 약속하며 51.6%의 지지율로 대권을 잡은 박 대통령의 집권 1년은 아직 큰 변화를 찾기 어렵다. 한때 70%를 웃돌던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최근 득표율과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사실 집권 1년차는 국정의 틀을 다지고 준비하는 시기로 다소간의 혼란은 불가피한 면이 있다.
하지만 집권 2년차부터는 구체적 성과를 보여 국정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모토인 국민행복시대의 뚜렷한 증거나 실질적 가능성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의 신뢰와 지지가 따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3가지 현안에 대한 과감하고 효율적 대처가 필요하다.
첫째 3%에도 못 미치는 저성장 구조,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빈부격차와 계층간 갈등 문제를 치유하는 데 결단을 내려야 한다.
쓸만한 일자리 창출은 별로 없고, 중소기업과 영세상인 서민층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망’은 아주 미흡하다.
정책의 과실이 대기업과 기득권층에게만 계속 집중된다면 그에 따른 사회적 혼란은 감당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주요 실물지표인 소비 생산 투자, 그리고 복지가 조화를 이뤄 경제는 물론 사회적 활력도 찾을 수 있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이유다.
둘째, 너무 경직돼 있는 야당과의 관계를 해소해야 한다. 야당 도움 없이 원활한 국정운영은 불가능하다. 즉 주요 법안처리가 안되는 등 국정혼란이 계속될 수 밖에 없다.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논란 속에 민주당 김한길 대표의 장외투쟁까지 전개됐던 정국은 ‘대선불복’까지 불거질 만큼 대치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민생보다는 정치싸움만 하는 ‘구태 정치’가 여전하다는 비판이다.
정치혼란은 국민불안을 키운다. 결국 박 대통령이 포용력과 정치력을 발휘, 야당을 국정 파트너로 인정하고 갈등을 풀어야 한다.
급변하는 동북아 지역의 정세, 특히 장성택 처형 이후 전개되고 있는 북한의 권력변화 및 파장에 대한 적절한 대처도 중요하다.
북한의 급격한 변화는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김정은의 공포정치가 남북관계에 갑작스럽고 큰 변화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철저한 대비와 긴밀한 대응이 절실하다.
방공식별구역과 일본의 집단자위권 문제 등 한반도를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 일본간 전개되는 패권다툼은 우리의 외교역량을 시험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집권 2기는 해결해야 할 난제가 쌓여 있고 그 만큼 높은 위기감도 요구된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1세가 ‘아르마다’해전의 승리를 통해 대영 제국의 기반을 마련하는 결정적 전기를 만든 것처럼 위기는 얼마든지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박 대통령도 집권 2년차에는 반드시 국정 활력을 되찾고 약속한 ‘희망의 새 시대’를 여는 대 반전을 이뤄낼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