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해 죽겠다. 우리가 일본군에 끌려가 어떤 고초를 겪었는데…" 대구지역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86) 할머니는 3일 오전 대구 포산고등학교 목련관(전시실)에서 이같이 말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대구지역 기숙형·자율형 공립고인 포산고등학교가 역사 왜곡 논란을 빚고 있는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를 채택한 사실이 알려진 다음 날인 이날 오전 대구지역 시민단체 회원들이 학교를 항의 방문했다. 이날 항의 방문에는 이용수 할머니와 채영희 대구10월항쟁유족회장, 김찬수 대구경북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상임이사, 천재곤 전교조 대구지부장을 비롯한 대구지역 10여개 단체 회원 20여명이 참여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를 보면 `위안부가 일본군 부대를 따라다녔다`고 적혀 있는데 이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일본군에 끌려간 게 아니라 스스로 위안부가 됐다는 말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15살 때 일본군에게 강제로 위안부에 끌려가 전기고문을 당하는 등 갖은 고초를 겼었다"며 "명문학교라는 포산고가 이렇게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교학사의 교과서를 채택할 수 있느냐"고 강하게 항의했다. 채영희 회장도 "유족들이 수십년간 피눈물을 흘리며 싸워 10월 `폭동`을 `사건`으로, `사건`을 `항쟁`으로 겨우 바꿔놨는데 교학사 교과서가 이를 다시 `폭동`이라고 거꾸로 돌려놨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러면서 "10월 항쟁 당시 피해자들이 무참히 학살당한 것은 물론이고 가족들까지 연좌제에 묶여 수십년을 고통 속에 살았다"며 "포산고가 교학사 교과서 채택 결정을 철회하지 않을 경우 가만있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날 이용수 할머니와 채영희 회장을 비롯한 시민단체의 항의 방문은 최근 포산고가 역사 왜곡 논란을 빚고 있는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를 채택한 것이 발단이 됐다. 포산고는 앞서 지난달 30일 학교운영위원회를 열고 교과협의회가 추천한 교학사와 비상교육, 천재교육의 한국사 교과서 3종 가운데 추천 1순위를 받은 교학사 교과서를 올해 한국사 수업 교과서로 채택했다. 학교운영위원회는 김호경 교장을 비롯한 교사들로 구성된 교원위원 3명과 학부모위원 4명, 지역위원 2명 등 총 9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날 회의에는 학부모위원 2명을 제외한 7명이 참석했다. 회의록에 따르면 이날 회의에서 한 학부모위원이 "교과협의회에서 선생님 세 분 중 두 분이 교학사(교과서)를 선정했고 나머지 교과서들은 정치적인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선정한 교학사(교과서)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후 김호경 교장과 교사, 학부모 등 나머지 위원 전원이 "제청한다"며 만장일치로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를 채택했다.  대구에서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는 포산고가 유일하다.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한국인 위안부가 전선의 변경으로 일본군 부대가 이동할 때마다 따라다니는 경우가 많았다"며 마치 일본군이 위안부를 강제로 끌고 다닌 것이 아니라 위안부들이 자발적으로 일본군을 따라다닌 것처럼 서술돼 있다. 또 1946년 미 군정의 식량정책 실패에 항의하던 시민들에게 경찰이 총격을 가해 발생한 `대구 10월 항쟁`에 대해서는 "조선 공산당의 지시에 따라 파업을 벌이던 중 대구에서 폭력 시위가 발생했다"며 조선 공산당의 지시에 따른 폭동으로 묘사하고 있다. 최근 법원은 대구 10월 항쟁 희생자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경찰이 적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민간인을 살해한 것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 밖에도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는 제주 4·3사건과 5·18광주민주화운동 등에 대해서도 우편향적인 시각으로 기술하고 있고 곳곳에서 오류가 발견되는 등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김찬수 대구경북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상임이사는 "포산고가 역사 왜곡 논란을 빚고 있는 교학사의 교과서를 채택한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결정을 철회하고 다른 교과서를 채택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김호경 교장은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에 일부 오류가 있는 점을 인정한다"며 "이번 교과서 채택 문제로 본의 아니게 많은 분께 마음을 아프게 한 데 대해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날 오후 학교운영위원회를 긴급 소집해 한국사 교과서 선정 재심의를 하겠다"며 "위원회가 결정할 사안이지만 논란이 된 만큼 교과협의회에서 추천한 교과서 3종 중 가급적 교학사 교과서를 제외한 나머지 2종 가운데 교과서를 채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사실상 결정 철회 의사를 밝혔다. 한편 경북지역에서는 성주고등학교가 유일하게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를 채택했으나 지난 2일 논란이 일자 곧바로 결정을 취소하고 교과서 재선정 절차를 밟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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