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불심 공부 끝에 부처님은 제게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하라 이르셨죠"
연말마다 꼭 정해진 농가에서 햅쌀을 찧어다가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눠주는 스님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간 정보사(대구시 수성구 범물동)에서 주지 정호스님(53·여)을 만났다.
2011년 초부터 꼬박 3년동안 정보사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은 갓 찧은 햅쌀을 받고 연말연시를 보냈다. 지난달 19일에는 햅쌀로 만든 떡국 100봉지가 새터민 등 100세대에 전달됐으며 2011년과 2012년에도 백미 10kg 100포가 기초수급자 등 120세대 등에 후원됐다.
동사무소를 통해 지원되기 때문에 쌀을 받은 대다수는 정보사에서 나눠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좋은 일을 하고 있는데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지 않느냐는 질문에 정호스님이 이같이 대답했다.
`무주상보시`란 `집착 없이 남에게 베푸는 것`을 뜻한다. 자신이 베풀었다는 의식은 집착을 남겨 결국 깨달음에 도달할 수 없게 만들 수 있으므로 이를 경계하고 집착을 버리라는 말이다.
스님 개인의 봉사활동이 아니라 50명 남짓 신도들의 시주와 기부금으로 선행이 이뤄진 만큼 그는 신도들에게 모든 공을 돌렸다.
정호스님은 신도들의 도움에 대해 "자식에게 쌀을 주면 그 쌀은 한 끼 식사가 될 뿐이지만, 그 쌀을 남에게 베풀면서 덕을 쌓으면 공덕이 자식에게도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2010년, 그는 30년 산 속 공부를 마치고 `사바세계`로 내려왔다. 이제 곧 54세가 되니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산 속에서 보낸 셈이다.
처음 대구로 왔을 때는 쉽게 주민들과 섞이지 못해 자신이 마치 이방인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주민들 속으로 스며들고 이들과 함께 어울리기 위해 신도들의 시주를 모아 주변의 어려운 이웃에게 쌀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꼭 정해진 농가에서 그 해 수확한 햅쌀만을 고집하는 데에도 이유가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 부모님이 그 해에 수확한 햅쌀을 이웃들과 나누는 걸 보고 자랐다"면서 "그 때의 따뜻했던 정을 어려운 이웃들에게도 나눠주고 싶어서 이것만큼은 양보하지 않고 고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호스님과 신도들의 꿈은 형편이 어려워 마음껏 공부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건네주는 것이다. 3층짜리 작은 건물에 자리 잡고 50명 남짓 신도들이 오가는 정보사의 살림살이로는 아직 까마득한 이야기다.
"태어나면서부터 빈손으로 태어나는 사람에게 있어 지금 손에 쥔 것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세상에 돌려보내야 하는 것들입니다. 집착을 버리고 작은 것에서부터 아끼면 큰 것을 베풀 수 있으리란 믿음으로 앞으로도 주변 이웃들을 도와 나가려고 합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