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뉴시스 논설고문>   2013년은 유난히 시끄러운 해였다. 소음 때문이 아니다. 사방에 넘쳐난 말 때문이다. 그 말들은 사랑과 배려와 격려와 감사의 말이 아니라 비난과 저주와 조롱과 무례의 말이었다. 같은 말을 해도 ‘아’ 다르고 ‘어’ 다름을 알면서도 모른 채한 사람들이 서로 한 쪽으로만 내뱉은 말들이었다. 그런 말들은 소음보다 훨씬 더 시끄럽고 사나운 ‘폭음(暴音)’이었다.  스스로 입을 열만한 위치가 된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저마다 말을 쏟아냈다. 입이 모자라면 인터넷과 SNS라는 새로운 입으로 말-대부분이 폭음인-을 옮겨냈다. 귀는 두 개이고 입은 하나라는 말에는 말하기보다는 듣기에 힘쓰라는 뜻이 담겨있음은 애초에 무시되었다. 오히려 새로 생긴 이 입을 놀리면 안 된다는 듯, 할 말이 없으면 남의 말이라도 새 입으로 퍼 옮겨야만 직성이 풀어지는 사람이 많았다. 어느 국어학자의 말처럼 ‘소통의 도구는 날로 발달하는데 인간은 더욱 거칠어져 불통하고, 저만의 인터넷 공간에 갇혀 대화에 서툰 신인류’로 변화해버렸다. 말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고, 말도 그렇게 많았지만 귀담아 들을 만한 말은 없었고, 귀 기울여 듣는 사람도 없었다. 듣는다고 해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말을 처음 말한 사람들에게 되 뱉어냈다. 한 번 오고간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거친 말의 주고받음이 되풀이되면서 비난과 저주의 강도도 더 세졌다.  말이 욕설과 다름없어지면서 귀를 막고 이제나 저제나 그 저열한 말들이 사라지기거나 줄어들기만 기다리던 사람들도 더는 참을 수 없어 자신의 말을 내놓기 시작했다. 소음이 커지고 폭음이 증폭되었다. 우리 민족 정체성의 한 측면이었던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은 사라지고 이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동방무례지국(東方無禮之國)’이 우리의 새 모습이 되었다. 말이 많았어도 상대방을 감복시키고 설득시킬 수 있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한 마디는 없었다. 오히려 자신의 입에서 나온 저주의 언사가 자신의 목을 죄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바람에 촌철자살(寸鐵自殺)의 한 마디가 되어버린 말들이 많았다.  경청할 생각 없이 소통만 강조하거나, 소통할 생각 없이 경청만 요구했던 사람들이 이 모든 헛되고 부질없으며 단지 남을 해코지하고 비위를 건드리며 부아를 터트리기 위해 내뱉은 말들의 주인공이다. 좋은 생각을 가진 사람만이 좋은 말을 할 수 있으며, 그런 사람들에게서는 좋은 향기가 날 터인데 소통과 경청의 제 뜻은 처음부터 무시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사람, 그것도 욕설과 비방이 없으면 말을 못하는 사람들에게서는 악취만 났다.  말을 삼가라는 가르침은 넘치고 넘친다. 노자는 ‘말이 많으면 자주 궁지에 몰린다. 그저 마음속에 담고 있는 게 낫다(多言數窮 不如守中)’라고 했고, ‘화는 입에서 나오고 병은 입으로 들어간다(禍從出口 病從入口)’라는 말도 있다. 이 두 가르침이 ‘화’를 막기 위해서 말을 삼가라는 개인적, 처세술적 가르침이라면 ‘군자는 말은 어눌하되 행동에는 민첩하다(君子 欲訥於言而敏於行)’는 공자의 말은 말조심의 본질적 중요성을 일깨운다. 지도자-군자에게 중요한 건 말이 아니라 실천임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실천 없는 말은 공허하다. 2013년이 유난히 시끄러웠던 것은 애초부터 실천과는 거리가 먼, 공허한 말이 많았기 때문이다. 성경도 ‘누구든 자기 혀를 제어하는 사람이 모든 일에서 자기 자신을 제어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자신을 제어할 수 있어야 지도자가 역할을 하는 것 아닌가? 2014년에도 말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제발 말을 가려서 하기 바란다. 침묵은 여전히 금(金)일 때가 많음을 알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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