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부터 제기된 역사교과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논란 끝에 지난해 12월10일 교육부가 8종 한국사 교과서를 최종 승인했지만, 일부 집필진이 지난달 교육부의 교과서 수정명령에 대한 취소소송을 제기하는 등 진통이 계속됐다. 또한 교과서 채택을 놓고 학교가 몸살을 앓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9일 교육부 장관이 편수기능 강화 방침을 밝히고, 13일 당정이 역사교과서 발행체제 개선안을 6월까지 내놓겠다고 결정했다. 이제 역사교과서 논쟁은 발행체제 개선에 괌심이 쏠릴 전망이다. 역사교과서 발행체제 개선안에 대한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4차례에 걸쳐 역사교과서 파동의 원인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진단해 본다. <편집자 주>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6월17일, 6·25 전쟁이 ‘남침’인지 ‘북침’인지도 모르는 학생이 많다며 역사교육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정부 차원의 역사교육 강화가 공식화됐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지난해 6월부터 인터넷 등에서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에 관해 확인되지 않은 유언비어가 마치 사실인 것처럼 빠르게 확산됐다.
유언비어 중에는 교학사 한국사가 안중근 의사는 `테러리스트`, 종군 위안부는 `자발적인 성매매업자`로 기술하고, 4·19혁명과 5·18광주민주화운동은 `학생운동`과 `폭동`으로 비하·왜곡하면서 이승만 대통령을 `국부(國父)`로 찬양하고, 5·18 군사쿠데타를 `혁명`으로 미화했다는 주장 등이 담겨있었다.
이처럼 유비통신(流蜚通信)으로 확산되자 민주당, 통합진보당 등 야당의 일부 의원들은 지난해 6월10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백범 김구 선생이 테러리스트인지 국무총리에게 질의하기도 했다.
또 민주당 대변인은 지난해 6월2일 "김구 선생과 안중근 의사를 테러활동을 한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5·16 군사 쿠데타를 ‘혁명’으로 미화하고, 4·19 혁명은 ‘학생운동’으로 폄하하고 있다"는 논평도 냈다.
하지만 국사편찬위원회의 8월 최종 검정 결과 발표 전까지 내용이 공개될 수 없다는 규정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최소한의 사실도 확인하지 않은 채 정치 공세에 나서 결국 사과를 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런 가운데 국사편찬위원회가 지난해 8월30일 2014학년도 고등학생들이 사용할 한국사 교과서 8종에 대한 검정 통과를 발표하자 논란은 더 확산됐다.
좌파 성향 단체들과 민주당 등 야당은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가 사실 왜곡, 독재·친일 미화 등 우편향이 심각하고, 교과서의 기본을 갖추지 못했다며 검정취소를 촉구하고 나섰다.
반면 우익 성향 단체들과 새누리당은 나머지 7종 교과서도 사실 왜곡, 좌편향이 많다며 모든 교과서가 수정이 필요하며, 한국사 교과서의 검정제도를 폐지하고 국정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좌·우 진영과 여야 정치권은 물론 교육계, 역사학계조차 사실 오류, 편향성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 교육적인 논의를 통한 진실을 추구하려는 태도를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오히려 이념에 몰입해 교과서 문제를 이념논쟁의 희생양으로 변질시켰다.
정치권 공방은 지난해 10월 교육부에 대한 국정감사까지 이어져 국정감사가 파행을 겪기도 했다. 또 교육부 장관은 교학사 교과서를 봐주기 위해 교육부가 다른 교과서까지 문제 삼는다며 야당으로부터 사퇴하라는 요구를 받기도 했다.
이처럼 역사교과서 논쟁이 이념논쟁으로 변질하는 과정에서 교육계나 역사학계는 교육적인 모습과 진실을 존중하는 태도보다는 이념논쟁에 편승하거나 휩쓸리는 모습을 보이는 데 급급했다.
교원단체의 양대 축이라 할 수 있는 교총과 전교조는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기에 바빴고, 머리를 맞대고 교과서 문제 해결을 위해 단 한 차례의 협의조차 하지 않았다.
역사학계도 각자 자기주장을 강조하거나 자신들 주장의 정당성을 알리기 위한 토론회, 세미나, 기자회견만 수차례 했을 뿐 자리를 함께하며 진실을 존중하는 태도는 전혀 보여주질 못했다.
원로 역사학자와 교육학자들은 교과서 파동을 중재하려는 모습보다는 기자회견을 하며 일방의 주장에 종속돼 그들의 견해를 대변하는 수준의 역할만 하는 안타까운 상황을 보여줬다.
이처럼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에서 촉발된 역사교과서 논쟁이 이념논쟁으로 변질한 것은 교육계와 역사학계가 아직도 저급한 이념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교육계와 역사학계가 정치권이나 좌·우 진영의 정치·이념투쟁에 휘둘리지 않고, 교육본질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학생 교육을 우선하는 관점에서 정치권과 진영 논리를 넘어서는 교육적 논의구조를 만들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교과서 등 교육문제를 정치권이 이념적인 공방 대상으로 삼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건전하고 합리적인 시민사회 세력의 역할이 더 강화될 수 풍토를 조성해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교육과 진실은 뒷전인 채 이념논쟁이 판을 치는 소모적인 논쟁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교육계가 진영 논리에서 빨리 벗어나는 게 가장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