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재 - 언론인  인식은 이성을 자주 배반한다. 외관이 화려할수록 정확한 인식을 어렵게 한다. 그래서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로 성급한 결정을 합리화한다. 외관이 함정에 불과했다는 것은 나중에서야 깨달을 때가 많다.  화려할수록 그에 따른 부작용도 크다. 엄청난 파국이 기다린다. 겉모습에 취하면 이런 참극을 예감하기 어렵다. 비슷한 상황이 재연되더라도 똑 같은 우(愚)를 범할 때가 많다. 그게 인간이다.  19세기 중반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이 발견되자 신흥 도시가 잇달아 출현했다. 샌 호아킨강(江) 근처의 스톡턴도 그 중 하나다. 금광 열풍이 시들해지자 스톡턴도 다시 내리막길을 걸었다.  스톡턴은 1990년대부터 다시 눈길을 끌기 시작했다. 대대적인 도시 재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골드 러쉬(Gold Rush)` 당시의 위상을 되찾을 것이라는 꿈에 부풀었다.  도시 한가운데에 아이맥스 영화관, 대규모 공공기관 청사, 스톡턴호텔 등을 건설했다. 야구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스톡턴 볼파크도 조성했다. 재개발을 주도한 시장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 했다.  도시 전체가 성형 수술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도심의 대형 주차장을 광장으로 만들었다. 나무를 빼곡히 심었고, 광장 곳곳에 전망대와 벤치를 배치했다. 폭포까지 만들어 볼거리를 제공했다. 공연과 축제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휴일이면 농산물 직거래 장터가 열렸다.  공공부문은 물론 민간 부동산 시장도 들썩였다. 저금리 담보대출에 힘입어 도시 곳곳에 새로운 주택이 들어섰다. 스톡턴은 쾌적한 도시로 탈바꿈했다.  화려한 시절은 오래가지 못했다. 경제적 재앙이 스톡턴을 비롯한 미국 전역을 덮쳤다.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 부실 사태가 터지자 주택 압류 사태가 여기저기서 벌어졌다. 스톡턴은 신설 주택이 많았다. 충격이 더 클 수 밖에 없었다. 중간값(median)을 기준으로 스톡턴의 주택 가격은 2006년 9월 이후 1년 동안 무려 44%나 폭락했다.  주민들의 삶이 궁핍해지자 스톡턴의 재정도 바닥을 드러냈다. 돈이 부족해지자 치안 등 기본적인 공공 서비스도 위축되기 시작했다. 깨진 유리창이 하나 둘씩 방치되면 도시 기능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 되고 말았다.  흉악 범죄는 더욱 기승을 부렸다. 2012년에는 살인사건이 71건으로 스톡턴 역사상 최다 기록을 세웠다. 인구 10만 명 당 흉악범죄 발생 건수가 무려 1417건에 달했다. 스톡턴은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10대 도시로 꼽혔다. 재정이 어렵다고 경찰을 20%나 줄인 결과였다. 최근에는 사정이 나아졌지만 디트로이트도 비슷한 처지다. 디트로이트는 지난 2007년 미국에서 1인당 흉악범죄 발생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로 평가됐다. 미시간주의 살인사건 가운데 2/3는 디트로이트에서 일어났다. 포브스는 FBI의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2009년부터 4년 연속 디트로이트를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로 꼽았다.  스톡턴과 디트로이트의 공통점은 치안 부재만이 아니다. 형편없는 재정 상황에서도 어깨를 나란히 한다. 두 도시 모두 재정난으로 파산을 신청했다. 이들은 미국 지방정부 파산 신청 규모에서 1, 2위를 달린다. 치안 등 기본적인 공공 서비스를 축소하는 것은 당연했다. 디트로이트는 빚 때문에 시립 미술관 소장품까지 팔아야 할 형편이다.  새누리당이 지방정부 파산제도를 검토하고 있다. 터무니없는 살림살이로 지방 재정이 멍들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 공기업 부채까지 포함할 경우 지방 정부의 빚은 170조원을 웃돈다. 화수분이 아닌 다음에야 이런 씀씀이를 감당해 낼 길이 없다.  지방정부가 파산을 신청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돌아간다. 교통, 안전 등 기본적인 공공 서비스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 공공 서비스 품질을 높이려면 세금을 늘려야 한다. 스톡턴 주민들은 지난해 11월 어쩔 수 없이 판매세 인상을 승인했다. 세금을 늘리지 않으면 생활이 더 나빠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지방 정부의 살림살이를 잘 감시해야 한다. 감시를 게을리하면 나중에 세금폭탄을 맞거나 저질 공공서비스를 감수해야 한다. 둘 다 고통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다. 고통을 막으려면 평소부터 노력해야 한다. 책임은 주민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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