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에 개봉한 영화 ‘선생 김봉두’는 인기 배우 차승원 씨가 주연을 맡았다. 김봉두는 교사 자질이 의심스러운 문제선생이다. 툭 하면 지각하고 교재연구보다는 술을 좋아하고 촌지를 요구하는 불량교사다. 꼬리가 갈면 잡히는 법, 봉투를 내지 않은 아이들을 차별대우 하다가 시골분교로 발령받게 된다.
산을 두개나 넘어야 나타나는 한적한 시골분교. 학생은 달랑 5명인데 봉두는 1교시 자습, 2교시 미술, 3교시 체육 등으로 떼우면서 오직 서울로 돌아 갈 궁리만 한다. 마침내 봉두에게 묘안이 떠오른다. 바로 전교생을 서울로 전학 시켜 분교를 폐교시키는 것. 저런 사람도 교사인가 의구심이 들 정도인 한심한 김봉두를 산골 어린이들의 천진난만함과 순수함이 개과천선시킨다는 줄거리였다.
`선생 김봉두`를 보면서 차승원 씨가 영화배우인 것을 처음 알았다. 괜찮은 영화이긴 했지만 나는 차승원 씨를 좋게 보지 않았다. 간간이 텔레비전에 비치는 그의 특이한 차림새가 너무 튀었다. 아내와 같이 텔레비전을 보다가 괴상한 헤어스타일의 그가 나오면 불에 덴 듯 채널을 돌렸다. 나와 종씨인 것이 무슨 죄나 되듯이.
요즘 차승원 씨가 화제다. 인터넷 검색순위에서 연일 상위에 오르며 화제의 중심에 서 있다. 그의 아들로 알려진 프로게이머 차노아씨를 놓고, 친부가 친자소송을 걸고 명예회손 당했다며 1억원을 청구하면서 차 씨의 가족사가 세상에 공개되고 부터다.
가장 먼저 보도한 곳은 채널A. ‘차승원 아들 차노아 친부 소송 논란’ 이라는 기사를 ‘단독’보도 했다. “차승원씨가 마치 자신이 낳은 아들인 것처럼 행동해 본인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주장한 것을 그대로 보도했다. 다수 매체들이 채널A 보도를 베껴 쎴다.
이튿날 차승원 씨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는 “차승원 씨는 22년 전에 결혼을 하였고 당시 부인과 이혼한 전남편 사이에 태어난 세 살 배기 아들도 함께 한 가족이 되었다”는 공식입장을 밝혔다. 차승원 씨도 친부의 친자소송이 제기 됐다는 보도가 나오자 즉각 “마음으로 낳은 자식”이라고 속내를 밝혀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네티즌들도 처음에는 먹잇감이 생겼다는 반응이더니 이 말 한마디로 호의적 분위기로 완전히 달라졌다. 결론적으로 이 일을 계기로 차 씨는 여론의 동정과 응원을 동시에 받으며 이미지가 한층 더 좋아졌다는 평판이다. 당시 4세였던 차노아군을 친자식처럼 키워온 차 씨의 순애보적인 부성애가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일은 일반인이라면 화제꺼리도 되지 않을 은밀한 이야기지만 대중적 스타라는 이유로 전국의 신문들이 필요이상으로 떠들었다. 심지어 차 씨의 처가까지 찾아가 인터뷰하는 등 극성을 떨었다.
생부는 여론이 자신에게 불리해지자 고소를 취하했다. 하지만 후폭풍이 걱정된다. 출생의 비밀을 모른 채 곱게 성장한 차노아는 어쩌란 말인가. 떠나간 여자가 미웠다고 한들 친자식인 노아의 장래를 생각했다면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질렀다. 손해배상으로 요구한 1억 원이 그렇게 대단했던가.
언론매체의 품위 없는 선정적 보도행태는 당연히 비난받아야 한다. 차 씨 가정, 특히 차노아가 입을 피해를 생각해보았어도 그랬을까. 신해철 사건에서 2001년 서울지법이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유명 연예인으로서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스타라고 할 것이므로 이른바 공적인물”이라고 판시한 것을 내세우지 마라.
2002년 대법원이 “사적 영역에 속하는 사안에 관한 것일 경우에는 언론의 자유보다 명예보호라는 인격권이 우선한다.”고 판시, 연예인의 사생활을 마구잡이로 파헤치는 것을 경계한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차승원 씨의 경우 보호받아 마땅한 사적 영역에 속한 사안으로 보는 것이 이성적이다. 아득한 과거 속의 일을 트집 잡아 소송을 건 친부나, 단독보도한 방송사나, 정신없이 퍼 옮긴 방송사와 신문사 모두 너무 경솔했다.
차욱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