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사태는 강대국들의 또 다른 완충지대인 한반도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대륙세력(사회주의권)과 해양세력(자본주의권) 간 다툼으로 비롯된 한국전쟁의 발생과 전개 과정에서 유사점을 많이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사태는 한반도를 무대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주변 강대국들의 세력 경쟁 과정에서 그들이 취할 수 있는 입장과 전략을 파악하고 미리 예측해 보는 것에서 많은 시사점들을 던져주고 있다.조선 말 근대 이후 한반도는 세 번에 거쳐서 큰 역사적 격변기를 맞이했다. 한반도의 큰 변화들은 한민족 자체의 사회적 필요와 역사 발전의 요구에 따른 것이었다기보다는 지정학적인 특성에서 비롯되는 외재적 요인들에 의해서 전개되었다.첫 번째 시기는 19세기 말 20세기까지로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새로운 갈등과 충돌 국면이다. 이 시기의 가장 큰 특징은 역사상 한반도를 사이에 두고 계속적으로 대결해 오던 중국과 일본 외에도 동북아로의 세력 확장을 꾀하던 새로운 열강 러시아와 미국이 한반도에 깊숙히 개입하고 관여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두 번째는 2차 세계대전과 해방을 전후로 하는 시기로 밀월 협력 관계였던 해양세력 미국과 일본이 새로운 세력 갈등을 겪게 되고 마침내는 균열을 일으켜서 서로 전쟁까지 하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에서 한민족 또한 국가의 독립을 맞이하게 되었지만 한반도 지배권을 연합국의 공동 성원인 대륙세력 소련과 해양세력 미국이 나눠 갖게 되면서 분단과 전쟁으로까지 이어지는 비극의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세 번째라고 볼 수 있는 지금 시기는 해양세력인 미국의 압도적 우위의 퇴조와 연합세력으로서 일본의 부상, 대륙세력인 중국의 강한 굴기, 러시아의 정치·경제적 자신감 회복과 동북아로의 진출 확대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동북아의 새로운 세력 재편 과정은 미국과 중국을 중심축으로 하면서도 각국이 복잡한 이해득실 관계에 따라서 합종연횡하며 요동치고 있는 모습이다.우크라이나 사태의 발생과 전개는 한반도 격변기의 두 번째 시기와 성격 면에서 겹치는 부분이 많다. 국제 파시즘과의 2차 대전에서 승리한 이후 연합국의 중심축이었던 미국과 소련은 전후 세계무대의 주도권을 놓고 서로 대립하게 되었다. 동시에 3차 세계대전의 위험성을 고려, 직접적인 무력 충돌을 피하면서도 한반도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전쟁을 수행하여 서로의 의지와 역량을 시험해보고 자본주의권과 사회주의권의 국제적인 세력 균형을 이루어 나갔다. 이 같은 양태는 오늘날 미국 서방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희생양으로 삼아 직접적인 군사적인 대결은 피하면서도 상대의 의지와 역량을 시험하며 새로운 균형을 암중 모색하는 과정으로 반복되고 있다.야누코비치의 실각 및 도피와 러시아의 군사 개입 등 우크라이나의 비상사태는 언젠가 발생할 수도 있는 북한의 비상사태 시 중국의 대응을 미리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러시아는 개입 명분으로 망명한 야누코비치의 요청과 우크라이나 내의 러시아인 보호를 들었다. 만약 중국이 북한의 비상사태 발생 시 북한지도부의 요청을 핑계 삼아 혹은 자국 국민의 안전과 재산 보호를 내세우며 북한을 직접 접수하려 든다면 사실상 국제사회에서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 것이다. 동유럽이 서방으로 이미 다 넘어간 상황에서 러시아에게 우크라이나는 서방 세력의 진출을 차단하는 마지막 방어선이다. 마찬가지로 중국의 입장에서는 북한이 동북아에서 미국 일본의 해양세력과의 직접적인 충돌을 막아주는 훌륭한 완충지대 역할을 맡고 있다.주민투표를 통한 크림반도의 러시아 편입은 북한의 비상사태 발생 시에 한국 주도로 진행될 수 있는 가장 평화롭고 이상적인 형태의 통일 방안 중 한 가지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남북 관계의 정상화와 꾸준한 교류 협력의 확대를 통해 남북 간 경제 격차를 줄이고 사회·문화적 동질성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동시에 북한 주민들이 한국 중심의 통일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갖는 것이 전제되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주변국들의 한반도 통일에 대한 최대한의 동의와 협력이며 그 중에서도 특히 예상되는 중국의 간섭을 방지할 수 있는 외교 역량을 한국이 갖추고 있어야 할 것이다.김원일 박사(모스크바대 정치학)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