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의 계속적인 하락이 세계경제를 부양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 중동 등 주요 산유국 경제에는 악재로 작용해 우리 경제에도 다소간의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KDI 등 국책연구기관이 7일 발표한 `유가하락 영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국제유가하락은 세계경제 회복의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우선 미국의 경우는 셰일산업이 다소간 영향을 받겠지만 소비는 크게 확대돼 경제활성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측된다.
HSBC와 UBS는 유가하락이 미국 소비자들에게 약 750억달러의 여유자금을 제공하는 효과로 나타나 2015년도 성장률에 0.2%포인트 기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골드만삭스는 셰일산업이 타격을 받으면서 에너지분야 투자가 GDP의 약 0.1%를 감소시킬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에서 석유·가스분야의 투자는 총투자의 9%, GDP의 1%를 차지하고 있다.
침체에서 허덕이고 있는 유럽경제에도 유가하락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됐다.
보고서는 "유가하락과 유로화 약세가 실질가계소득 개선과 소비촉진에 기여할 것"이라면서 "유럽경제 전반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BNP파리바는 "현재의 저유가 기조가 지속될 경우 0.3~0.4%포인트의 성장률 개선 요인이 발생한다"고 전망했다. 또한 도이치 뱅크는 올해 브렌트유가 배럴당 평균 75달러선을 유지할 경우 유로존 GDP는 0.2%포인트, 소비는 0.3%포인트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으며 옥스포드 이코노믹스는 유로화기준으로 유가가 17% 하락하면 가계수입은 1.75%, 실질가계소득은 1.6%(2014년 0.4%)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대신 보고서는 유가하락이 유로존 저물가 기조를 심화시킬 경우 경기하방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2014년 유로존 물가상승률은 지속적으로 하락해 현재 0.3%를 기록중이다. 일부 남유럽 국가들의 경우는 디플레이션 상황에 처해 있다.
일본의 경우도 소비진작과 무역적자개선 등 경기회복 기대감이 확대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물가상승세 둔화에 따른 소비진작이 기대되고 장기적으로는 가계실질구매력과 기업수익 증가, 교역조건 개선 등 실물경제 회복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일본의 제일생명경제연구소는 유가하락으로 일본의 무역적자가 3조7000억~6조7000억엔 가량 개선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 등 신흥국에도 유가하락이 실질구매력을 높이는 촉매제가 될 전망이다. 중국은 2013년 기준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으로 기업의 생산비 절감, 소비자의 실질구매력 상승으로 긍정적 영향이 예상된다.
보아(BOA)는 "국제유가가 10% 하락하면 중국의 GDP는 0.15% 상승하고 무역수지 흑자는 GDP 대비 0.2~0.5% 증가,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25%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제조업, 항공업, 해운업 등을 중심으로 생산비 절감을 통한 가격 및 수출경쟁력이 제고될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중국이 세계에서 4번째 산유국이란 점을 감안할때 원유 원유생산지역의 경기둔화와 신재생에너지사업 투자위축, 국유에너지기업의 해외투자가치 하락 등은 예상되는 시나리오다.
이에반해 러시아, 베네수엘라, 중동 등 산유국들은 유가하락이 경제성장에 큰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올해 유가가 배럴당 60달러에 머물 경우 소비부진 및 투자감소 심화로 성장률이 4.6% 하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는 석유·가스 부문이 GDP의 1/5, 수출의 2/3, 재정수입의 1/2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카자흐스탄 등 CIS국가 역시 재정수입 및 무역흑자 감소에 따른 성장률 둔화가 우려되며 사우디 등 중동산유국과 베네수엘라, 인도네시아 등의 신흥 산유국도 악영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문제는 유가하락으로 러시아 등에 안 좋은 영향이 생길 경우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가 하는 점이다.
국내 연구기관들은 비(非) 산유 선진국과 신흥국들이 유가하락으로 경기가 좋아지면 우리 수출에도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산유국의 경우도 경기둔화가 나타나겠지만 우리나라의 대(對) 산유국 수출 규모가 크지 않다는 점을 고려할때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분석한다.
하지만 러시아 경제위기가 신흥국 등 우리나라와 교역 및 금융연계성이 높은 주요 국가로 전이될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국내 금융사의 러시아, 인도, 인도네시아 등 주요 신흥 12개국 익스포저(exposure, 특정기업이나 국가와 연관된 금액) 는 113억3000만달러(전체의 10.5%)로 러시아 경제위기의 신흥국 확산시 경제적 손실 가능성이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전통의 산유국인 사우디나 UAE 등은 저유가가 지속되더라도 버틸 힘이 있지만 러시아와 베네수엘라 등 신흥산유국은 뱃집이 약하다는 점도 문제다.
러시아의 경우 지난해말 기준 외환보유고가 약 4500억달러로 단기 대응여력이 충분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경제성장률은 2009년 이후 최저수준인 0.2%를 기록했다. 2015년에는 -2%까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러시아가 1998년과 같은 국가부도사태에 이르지 않더라도 국가신용등급의 투기등급 강등, 기업 및 금융기관의 부도, 자본통제 도입 등으로 국제금융시장 경색을 초래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현재 S&P의 러시아 국가신용등급은 투자적격 중 가장 낮은 BBB-인데다 부정적 관찰대상에 포함돼 투기등급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동국가들의 건설수주에도 악재가 우려된다. 중동에서 우리 건설업체들이 올린 수주액은 2013년 우리나라가 해외건설을 통해 올린 전체 수주액의 57.4%에 달한다.
KIET 관계자는 "사우디, 쿠웨이트, UAE 정부는 향후 진행될 교육 및 보건의료 등의 인프라 프로젝트를 유가하락에도 불구하고 계획대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며 "하지만 이라크, 리비아, 이란 등은 재정상태가 취약해 개발계획 축소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