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반 이상 100-110달러 선을 유지하던 국제 유가가 작년 8월 이후 급락해 50달러를 밑돌고 있다. 여러 예측 기관이 저유가가 상당기간 지속할 것으로 전망한다. 유가 급락의 원인으로 대략 3가지 주장이 있다. 첫째, 셰일가스 개발 등에 의한 세계 석유 공급 증가, 둘째, 경기침체로 인한 수요 감소다. 수급 요인으로 보는 해석은 ‘장기간 유지되던 고유가가 작년 8월 이후 왜 급락했는가’를 설명하기 어렵다. 셋째가 바로 전략적 음모론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의 셰일가스 산업에 타격을 주려고 저유가를 유도한다는 분석과 미국이 사우디를 앞세워 저유가로 러시아와 반미 산유국을 압박한다는 주장이다. 국제 유가에서 하나의 미스터리는 2002년 미국의 이라크 점령 이후 8년 이상 계속해서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다 배럴당 100달러대를 넘었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산유국은 고유가를, 소비국은 저유가를 원하는데 미국은 막대한 전비를 들여 고유가를 미국 경제에 안겨줬다. 그간 유가 상승의 원인을 중동정세 불안, 개도국 소비증가, 석유의 금융상품화 등으로 설명했지만, 이런 요인들은 늘 있어왔다. 전문가들은 국제유가 등락에는 수급 요인에 더해 ‘석유자원의 전략적 성격’이 있다고 말한다. 사우디가 셰일 가스 등 비전통적 석유 개발에 타격을 주려고 저유가를 지속한다는 주장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저유가는 석유·가스의 경쟁 에너지인 신재생 에너지, 원자력 등의 경제성을 약화한다. 에너지 소비절약과 효율 개선 노력도 붕괴시킨다. 에너지 저장장치(ESS), 전기차, 탄소 포집 저장(CCS), 연료전지 등 에너지 기술 개발도 무력화한다. 에너지 산업 전체를 근본부터 흔드는 것이다. 1980년 36달러였던 유가가 1986-1999년 13-20달러로 유지됐는데 이때 실제로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 사우디와 석유 부국은 비전통적 석유와 석유 절감 기술이 경제성을 갖기 전에 손을 봐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원인이 어떻든 앞으로 상당 기간 저유가가 지속한다면 한국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1986-1999년간의 저유가 시대에 선진국이 대부분 원전을 포기할 때 한국은 지속해 세계 3대 원전강국이 됐다. 반면, 그때 해외 자원 개발의 호기를 놓쳐 아직도 OECD 회원국 중 최악의 에너지 자급도에 갇혀 있다.저유가는 우리에게 길지는 않을 것이다. 이 기간의 선택이 한국 에너지산업의 장래를 좌우할 것이다. 엄명천 한국에너지재단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