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禮)는 인간사회의 기초이다. 무례한 사람은 기피당하고 예의 바른 사람은 환영받는다. 그러나 지나쳐서는 안 된다. 공자는 “지나친 공손은 예와 어긋난다”는 뜻의 과공비례(過恭非禮)를 경고했다. ‘맹자’도 이루장에서 “비례지례(非禮之禮)와 비의지의(非義之義)를 대인(大人)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인은 비례와 비의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과공비례이고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8년전 과공비례가 화두로 회자됐다. 한국계 조승희가 저지른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사건 때다. “한국정부와 국민을 대표해 사죄를 표한다. 슬픔을 나누고 자성하는 뜻에서 32일 동안 금식을 하자” 한인회 주최 희생자 추모예배에 참석한 주미대사가 한 말이라고 한다. 기절초풍할 일이다. 사실 턱도 없는 소리다. 조승희는 엄연한 미국인인 데다 당시 우리 정부도 ‘위로와 애도’는 했지만 ‘사죄’는 하지 않았던 것에 견줘볼 때 주미대사의 사과는 적절치 않다는 비판이 나왔다. 국내 언론이 다투어 미국에 사과의 글을 싣다 미국 내에서도 “왜 한국이 사과를 하느냐” 하는 반응이 나왔다. 다민족 국가인 미국의 입장에서 보자면 미국에서 자랐고 미국국적을 가진 조승희가 저지른 범죄인만큼 미국이 부끄러워 해야 할 일인데 왜 한국이 사과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했다가 시대착오적인 한 망상가의 공격으로 얼굴과 팔에 큰 부상을 입은 리퍼트 미국대사를 둘러싸고 또다시 과공비례가 논란되고 있다. 얼굴에 10cm가 넘는 큰 상처를 입고 80바늘 넘게 꿰매는 사고를 우리나라에서 당한 것은 미안한 일이지만 지도층이 온통 들고 나서서 병문안행렬로 줄을 잇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미국대사가 피곤해서 면회를 거부할 정도였다고 하니 얼마나 극성스러웠는지 짐작이 간다. 서울시민들은 한술 더 떴다. 서울 도심에서 ‘I love America’라는 구호가 넘치는 것이 카메라에 잡혔다. 더구나 지지난 주말(7일) 리퍼트 대사 쾌유기원 촛불 문화제와 부채춤 공연에 발레, 난타공연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심지어 대통령의 제부가 직접 나서 단식과 석고대죄까지 하면서 “so sorry… 너무나 미안하다”고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치료비를 대신 내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개고기와 미역을 들고 병원을 찾은 이도 있었다고 한다.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때 아닌 진풍경은 외신기자들의 촬영소재가 됐다. 이게 과연 범연한 일로 여길 일인가? 대국에 양수거지(兩手据地)하듯 한 과공(過恭)은 아니었는지. 이승만 박사의 실없는 방귀에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고 아첨했던 어느 인사의 일화가 떠오른다. 리퍼트 대사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정이 넘치는 한국인이라고 후한 점수를 주었을까. 정작 장본인인 리퍼트 대사는 퇴원 기자회견을 통해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며 “훌륭한 우정과 한국 국민들의 성원에 다시 감사드린다. 같이 갑시다”라며 담담한 자세였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예와 의는 반드시 필요하다. 사람들이 예와 의를 지키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뭇짐승과 구분되고, 그래서 종종 남에게 해서는 안 될 짓을 하는 사람을 일컬어 인면수심(人面獸心)이라 하기도 한다. 송강 정철이 그의 훈민가 중 ‘마을사람들아 옳은 일 하자스라/ 사람이 돼나서 옳지 옷 못하면/ 마소를 갓 고깔 씌어 밥 먹이나 다르랴’고 한 처럼. 하지만 넘침은 모자람만 못할 경우가 많다. 칭찬도 그렇다. 칭찬에 인색한 것도 문제지만 지나친 칭찬도 좋을 게 없다. 자식을 키운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이는 사회적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적당한 겸손은 미덕이지만 지나치게 자신을 낮추거나 너무 상대방을 떠받들면 오히려 욕보이는 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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