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대법관과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지낸 김능환 전 대법관이 공직에서 물러나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거나 로펌행으로 부와 권세를 누리기를 거부하고 ‘편의점 아저씨’의 길을 택하면서 사회전반에 잔잔한 감동을 뿌렸다. 그가 일한 편의점은 그의 아내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남편의 퇴직금을 가지고 마련한 곳이었다. 대법관까지 지낸 그로서는 너무나 뜻밖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그는 6개월여에 불경기와 편의점 일의 어려움을 들어 로펌으로 방향을 잡아 또다시 사회를 놀라게 했다. 편의점 점원이라는 소시민생활을 그만두고 대형로펌의 고문 변호사로 가면서 남긴 말이 “무항산(無恒産) 무항심(無恒心)”이라는 ‘맹자’의 구절이다. 이 말은 맹자가 제(齊) 선왕(宣王)에게 왕도정치의 요결을 가르친 것인데, ‘항산(恒産)’은 가축이나 농토와 같이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재산을 뜻하고, ‘항심(恒心)’은 인간의 착한 본성을 뜻한다. 기본적인 재산이 없으면 백성들이 착한 본성을 잃고 온갖 죄를 범하게 될 것이니, 먼저 백성들의 기본 재산을 마련해주어야 나라가 잘 다스려 지고 그런 연후에야 천하에 왕 노릇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맹자의 주장이다. 맹자는 또 “항산이 없어도 항심을 가질 수 있는 자는 오직 선비(士)뿐이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농민이나 자영업자가 아닌 전임 대법관이 “무항산이면 무항심”이라는 말로 로펌행을 변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벌써 거의 2년이나 흐른 김능환씨의 로펌행을 비난하려는 뜻은 전혀 없다. 오히려 ‘무항산 무항심’을 현대적 척도에 맞추어 재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림잡아도 김 전 대법관은 공무원 연금으로 매월 400여만원을 받을 것이며, 가게에서 매월 100여만원 이상은 소득이 생긴다면 대충 매월 500만원 정도의 소득이 있다는 것인데 이는 한국노총이 발표한 2013년 4인 도시가구 표준생계비에 해당한다. 즉, 그 정도 소득이면 4인의 도시가구가 중산층의 소비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전직 대법관이었으므로 그 정도의 소득으로 생계가 곤란한 것은 아니지만 품위유지가 안됐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할 것 같다. 도대체 현대판 청백리라고 칭송받던 김 전 대법관의 품위에 어울리는 생활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나 그 정도 수입으로 어림없다는 것일 터이다. 연소득 5000만원이나 되는 전직 고위공직자가 ‘무항산이면 무항심’이라고 말하는 시대가 된 것으로 이해하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난한 백성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품위유지는커녕 먹고사는 문제가 전부인데 모셔 가려는 로펌은커녕 손발을 비벼도 일할 곳을 찾기가 정말 어렵다. 위기에 ‘129콜센터’<보건복지콜센터>가 있다고 하지만 ‘금 나와라 뚝딱’하는 도깨비방망이는 아니다. 가난할수록 아픈 곳은 더 많고 병원 갈 일이 많아지는데 기초생활수급비와 노령연금으로는 턱도 없다. 그래서 하게 되는 것이 파지라도 주워 몇 천원이라도 버는 일이다. 요즘은 그것도 너도나도 나서서 파지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한다. 파지를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기초생활수급 독거노인 세 사람이 헌옷수거함을 훔쳐 팔다가 붙잡혔다. 지난주에 대구에서 벌어진 일이다. 하나에 5000원도 받고 3000원도 받았다는데 파지를 1년간 주워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벌금이 부과될 것이라고 하니 야단났다. 만약 상습절도법이 아니고 너무 가난해서 우발적으로 저지른 것이라면 대구시가 자랑하는 ‘달구벌복지기동대’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 헌옷수거함을 들고 가 팔게 된 죄의 한 축을 대구시가 감당해야 할지도 모른다.“기본적인 재산이 없으면 백성들이 착한 본성을 잃고 온갖 죄를 범하게 될 것이니, 먼저 백성들의 기본 재산을 마련해주어야 나라가 잘 다스려 지고 그런 연후에야 천하에 왕 노릇을 할 수 있다”는 말의 참뜻을 되새겨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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