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본 대학로 연극은 ‘삼포 가는 길’이었다.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고달픔과 쓸쓸함을 그린 황석영 소설이 원작이라는 것도 몰랐다. ‘1999년 일곱 번째 달에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온다’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허황된 종말론으로 그치길 바라며 고3 마지막 시기를 무사히 넘기고 공대 00학번이 된 남학생 셋이 좁은 객석에서 그 연극을 봤다.1989년 설립돼 지금까지 그 자리에 버티고 있는 동숭아트센터가 무대였다. 공연담당 기자가 돼 그곳을 드나드는 지금 ‘삼포 가는 길’포스터가 눈에 띄면 그때가 떠오른다. 혜화역 1번 출구로 나와 대학로 중심부로 들어가기 전 오르막길에 위치한 이 건물 주변 풍경은 17년 전에 비해 많이 바뀌었다. 공연장의 메카라는 대학로에는 술집을 비롯한 상업시설이 즐비하다.대학로를 일군 연극인들은 주변으로 밀려나 ‘오프 대학로’에 자리를 잡아야 했다. 대학로 북쪽 끝 혜화동 로터리부터 한성대 입구 역 쪽으로 올라가는 길 주변이다. 이윤택 예술감독이 이끄는 연희단거리패의 전진기지 게릴라극장도 이곳에 있다. 2004년 동숭동(대학로)에서 출발, 지난 2006년 혜화동으로 옮겨 재개관한 극장이다. 80석 규모의 소극장이지만 연극을 160편 가까이 선보이며 연극인들의 실험의 장이 돼왔다. 하지만 이 예술감독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뒤 각종 지원금이 끊기고 재정이 악화되면서 오는 16일 ‘황혼’을 끝으로 폐관이 확정됐다. 연극인뿐 아니라 젊은 뮤지컬 배우들에게도 대학로는 삶의 터전이자 꿈의 무대다. 뮤지컬 영화 ‘라라랜드’의 명장면을 패러디한 국내 영상물이 한때 인기를 끌었는데, 촬영 장소는 대학로 인근 낙산공원이었다. 하지만 블랙리스트가 ‘한국의 라라랜드’ 대학로로 몰려든 예술인들의 꿈과 희망을 꺾어버렸다. 종종 ‘왜 세금으로 예술가들을 지원해야 하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진은숙 서울시향 상임작곡가의 말로 답변을 대신한다. “내가 은하계에 가서 살 것도 아닌데 왜 세금으로 우주 탐사를 하냐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거기서 얻어지는 의식, 학문과 진리에 다가가는 것은 엄청난 일”이라는 것. ‘라라랜드’에서도 우주탐사 장면이 나온다. 사랑에 빠진 세바스찬과 미아가 그리피스 천문대에서 별들이 가득한 공간을 떠도는 판타지다. 끝없이 넓고 큰 느낌. 광대무변(廣大無邊)이란 단어가 떠오르는 순간이다. 과거엔 직업 예능인을 광대라고 불렀다. 순우리말이지만 한자로 쓸 땐 ‘廣大’로 적기도 한다. 대학로는 광대들의 예술적 영감이 광대하게 펼쳐지는 곳이어야 하는데, 상업적인 논리가 판치고 지원금을 무기 삼아 광대들을 길들이려는 정부가 숨통을 옥죄어 왔다. ‘간절히 바라면 우주가 도와준다’던 분이 외치던 ‘문화 융성’은 공허한 메아리가 돼 대학로에 울려 퍼지다 마침내 사그라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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