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충제 계란’ 파동으로 드러난 우리나라 식품 안전 관리는 총체적으로 부실했다는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 국회와 소비자단체의 경고를 흘려들어 사전예방에 실패하더니, 대응 과정도 엉망이었고 생산 농가와 민간 인증기관의 도덕적 해이는 극에 달했다. 금지된 살충제를 사용한 농가나, 관리 감독을 게을리 한 정부나 어느 쪽도 국민건강에 대한 책임의식은 없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18일 살충제 달걀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전국 산란계 농장 1239곳 중 49곳에서 사용이 금지되거나 기준치 이상이 검출되면 안 되는 살충제 성분이 나왔다.이 중 친환경 인증 농가가 31곳으로 63%에 이른 것은 충격적이다. 또 허용 기준치를 넘지 않았지만 살충제가 조금이라도 검출되면 안 되는 친환경 농가도 37곳이나 됐다. ‘친환경 인증제’가 엉터리로 운영되고 있는 사실도 드러났다. 64개 민간 친환경 인증기관이 난립해 전체 산란계 농가(1456곳) 중 절반 이상에(780곳) 친환경 인증을 줬다. 정부가 민간에 인증 업무를 이양하는 것 자체는 세계적 추세이지만 그게 우리나라에선 건당 80만원짜리 인증서 장사로 변질된 것이 사건의 발단이 됐다. 계란뿐 아니라 농축산물 등에도 인증이 남발되고 있다. 지난 한 해 농축산물 등의 인증 품목 수만 7만8000여개다. 정부의 인증제 관리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이번 기회에 대대적인 정화작업을 벌여 친환경인증제가 공신력을 갖도록 해야 한다.전수조사 과정도 엉망이다. 20일의 발표결과를 곧이곧대로 믿을 국민은 거의 없을 듯하다. 검역 담당자가 무작위 샘플로 시료를 수집하지 않고 농가에서 골라준 달걀을 수거해 조사를 진행한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났다. 제대로 대처하려면 정확한 조사가 관건인데, 날림으로 조사를 했다니 어이가 없다. 복지부동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문제가 불거지자 농식품부는 재조사를 하는 소동을 벌였다. 정부가 21일 거듭 발표 한다지만 국민이 신뢰하겠는가.신뢰는 한 번 무너지면 회복하기 힘들다. 특히 달걀은 값싸고 영양가 많아 온 국민이 즐겨 먹는 ‘국민식품’이다. 정부는 이번 기회에 공장식 밀집사육부터 친환경 인증제까지, 식품안전 체계 전반을 근본적으로 손질해야 한다. 특히 관리감독에 중대허점을 보인 농식품부와 식약처에 대대적인 정풍운동을 벌여 두 번 다시 부실행정이 없도록 다른 부처에 경각심을 일깨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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