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일 20년 전 6·15 남북 정상회담의 첫 물꼬를 튼 주역인 박지원 전 의원을 국정원장으로 파격 발탁한 데에서 남은 임기 동안 남북 관계에 승부를 걸겠다는 의지를 상징적으로 엿볼 수 있다.북한이 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사이에 일군 4·27 판문점 선언과 9·19 평양 선언을 부정하며 남북 간 ‘평화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위기가 감지된 것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자칫 한반도의 첫 평화를 알렸던 6·15 시대 이전으로도 회귀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의 상징적 인물인 박 전 의원을 국정원장으로 배치했다고 볼 수 있다. 인사를 통해 북한을 향한 강한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다.박지원 국정원장 카드가 남북 관계의 상징성이 보다 강하다면, 서훈 안보실장 카드는 향후 한반도 정세를 실질적으로 풀어감에 있어서 기존의 한미 관계에 무게 중심을 뒀던 데서 벗어나겠다는 실용적 접근으로 볼 수 있다.정의용 실장을 중심으로 짜여졌던 1기 안보실 체제가 대미 외교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서훈 실장의 2기 체제에서는 대북 관계 중심으로 재편된다는 점을 인사를 통해 대내외에 공식화 한 것으로 해석된다.미국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모색하겠다는 지난 3년 간의 접근에서 벗어나, 북한을 통한 미국의 변화를 가져가겠다는 한반도 정세 패러다임의 전환을 알린 것이다. 자리 이동을 통한 변화, 이른바 ‘서훈·박지원 시프트(shift)’ 효과를 겨냥한 전략적 선택이다.서 실장은 이날 “우리 정부 들어 남북 관계에 긍정적인 변화가 많이 있었다”면서 “그러나 최근의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현 상황에 대해 신중하게 대응하되 때로는 담대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한·유럽연합(EU) 화상 정상회담에서 밝힌 11월 미국 대선 이전에 3차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데 전력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트럼프 대통령은 4개월 남은 대선 전까지 북한 문제에 관심을 기울일 여지가 적다. 김 위원장이 자력갱생과 정면돌파전으로 압축되는 ‘새로운 길’을 걷고 있어 북미 정상 간 접점을 만드는 일도 쉽지 않다.오는 7·27 정전협정체결일을 기점으로 ‘북미 종전선언’을 추진한다면 북미 정상 모두의 관심을 붙잡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체제안전보장을 요구하는 북한을 위한 `협상 칩`이 될 수 있다. 북미 정상이 마주 앉을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데 정치적 의미의 종전선언과 한미연합 군사훈련 중단 카드가 매력적일 수 있고, 문 대통령은 2년 전에도 같은 환경을 조성한 바 있다.다만, 남북 관계의 변화 속에서 비슷한 방식의 접근이 유효할지 여부와 트럼프 대통령을 보다 적극적으로 유인할 만한 카드가 더 필요하다는 점이 극복 과제로 꼽힌다.청와대 관계자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변화의 모멘텀을 마련해야 하고, 또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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