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를 위해서, 수단이 있고 인기도 있는 전문가는 양쪽 진영을 오가며 용병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어떤 수단이든 그것이 이기기 위한 방법이라면 진영에 관계없이 사용된다. 오직 승리만이 추구되는데 승리의 결과는 상대방을 축출하고 자기편만이 살아가는 과거의 회복이므로 반대편에게는 비극이다. 복수의 진영은 어느쪽이나 기존의 자리를 회복하려는 수구세력이다.복수의 진영이 추구하는 것은 현상 유지이고 과거 체제의 보존이며 이를 위해서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막는 일이다. 21세기 조선의 복수극은 피해자라는 투구를 쓰고 다가오는 변화에 대해서 보복의 분노라는 방패로 막아내며 끊임없이 가해자를 찾아다니면서 과거 수호라는 창으로 공격한다. 복수의 진영간의 분노의 전쟁은 언제까지나 유지되는 것 같지만 자원은 소진되고 사람들은 지치기 마련이다. 전쟁터가 된 대지는 생산을 멈추고 젊은이들은 미래를 걱정한다. 자원의 고갈과 젊은이의 눈물은 복수를 멈출 시기임을 알려준다. 부끄러워해야 한다. 우리의 분노로 우리의 터전을 허무는 어리석은 상황을 깨닫고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무너진 성터를 다시 세우는 것은 시간이 걸리기에, 우선은 마음의 집부터 다시 세워야한다. 분노의 용광로의 불을 끄자. 남에게 요구하기 전에 스스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에게 냉정을 요구하면서 자기를 정돈할 수 있을 때에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의 정돈에서 주위의 정돈으로 나아가서 현실을 보지 못하게 하는 수많은 정보의 창구를 닫자. 유튜브든 TV이든, 인터넷이든 신문이든, 맨날 똑같은 이야기를 제공하는 모임이든, 나를 분노하게 만들고 완벽한 보복의 방법을 제시하며 최종적인 복수의 결말을 약속하면서 승리의 희망을 선사하는 것을 비즈니스로 하는 모든 연결을 끊자. 세상으로 돌아가서 현실속의 사람들을 만나고 실제 세계를 바라보자.아무도 예상못한 크고 중요한 사건이 발생하거나 문제를 해결할 위대한 정치지도자가 나타나서 모든 사태를 일거에 해결한다는 그런 일은 드라마에서나 있는 법이다. 단순한 해결책은 미디어에 의해서 과장되고 널리 유포되어서 정치적 환상을 만든다. 인간은 정치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 한계를 지닌 인간은 이상적인 정치를 추구하지만 유토피아를 창조할 수 없으며, 그러한 시도 자체가 전체주의 국가를 건설하여 모두에게 불행을 안겨준다는 사실을 역사에서 배웠다. 상대편이 득세하는 지금의 상황에서 오히려 그것을 배울 수 있다. 상대편이 득세하는 지금의 상황에서 인내를 배우고 인간을 알게 된다. 중독에 가까운 정치에 대한 지나친 몰입을 피하며 할 수 없는 것이 있음을 인정해야 하겠다. 분노하게 하고 근거없는 환상을 제공하는 것에서 벗어날 때에 현실로 돌아오게 되고, 현실을 인정하고 직접 현실에 마주칠 때에 세상을 볼 수 있다.미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한다. 진영의 지향점이 무너진 상황에서, 혼란의 전쟁의 와중에서도, 복수의 진영에서 벗어나 현실을 발견하고, 현실에서 출발해야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미래로 나아감은 복수를 위함이 아니고 그래서 가해자 찾기가 아니며 스스로 피해자됨에 안주함이 아니고 현실 세계에서 자신의 몫을 찾고 자신의 길을 걷는 것이다. 자신의 길에서 자신만의 과제를 찾게될 때에 비로서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지향하는지를 다시 발견할 것이다. 그러한 지향이 모여질 때에 비로서 복수의 진영이 지향하는 보복을 대신해서 이 사회를 이끌어나갈 새로운 가치가 탄생할 것이다. 그때에 그 지향하는 바를 우리의 가야할 길이고 가는 길이며 그렇게 걷겠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멈추어진 생산이 다시 재개되고 미래의 젊은이들의 얼굴에서 웃음을 찾아야 하겠다. <출처: 펜앤드마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