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체제의 핵심 모토는 권력의 공유와 분점을 통해 누구도 장기적이고 전면적인 권력을 틀어쥐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여야가 사이좋게 정권을 나눠갖자는 정신이다. 그 단적인 표현이 대통령 5년 단임제이다.5년 단임제 대통령은 국정 운영 성과나 평가와 상관없이 5년이 지나면 무조건 후임에게 권력을 넘겨줘야 한다. 87체제 대통령의 역할은 재임 기간 동안 얼마나 중요한 업적을 남겼느냐 하는 것보다 얼마나 무난하게 제때 후임자에게 권력을 넘기고 떠나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웬만큼 자격과 능력을 갖춘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쯤 집권하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권력구조였다. 1987년 당시 개헌 논의를 주도했던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등 3김씨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반영된 결과이기도 했다.또한 이승만과 박정희의 장기집권 그리고 군부독재의 문제를 극복하고, 좀더 개방화되고 유연화된 거버넌스 시스템을 구현하자는 시대적 요구가 반영된 권력구조였다.이런 권력구조는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6공화국 들어 우리 사회가 민주화 추세에 발맞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한 단계 더 도약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식경제의 발전과 다양한 분야의 한류, 인권 감수성의 강화도 권력 분산의 효과를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하지만 87체제는 거버넌스 시스템의 부재 또는 약화라고 표현할 수 있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87체제 이전에는 군부 엘리트들이 대한민국 거버넌스 시스템의 정점에 있었다. 그 시스템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 또는 얼마나 도덕적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하지만 그 시스템 자체는 분명 대한민국의 개발연대를 대표했고 거기 상응하는 성과를 만들어냈다.87 체제에서는 그런 권력이 존재할 수 없었다.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일 때 권력이 가장 막강하고 취임 이후에는 사실상 갖가지 제약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의 권력은 국회의 도움 없이는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당연히 총선 결과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지만, 군부정권 시대와 달리 대통령이 소속 정당의 공천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수단도 제한적이었다.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은 이런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무리를 한 결과였다. 대통령이 2016년 20대 총선에서 진박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새누리당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한 결과 김무성과 유승민 등 당내 차기 주자들의 반발을 불러왔고 그 결과가 총선 패배로 이어졌다. 당내 중진들의 이탈과 총선 패배는 곧바로 정권의 붕괴를 불러왔다.2016년 4월 13일 20대 총선이 치러진 지 불과 3달 후인 7월 말에 TV조선의 미르/K스포츠재단 보도가 터져나왔고, 9월 20일에 한겨레가 최순실을 국정농단의 주역으로 지목했다. 10월부터 촛불집회가 본격화됐고 탄핵이 정국의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 20대 총선부터 이듬해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결정까지 1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한국의 현재 정치체제를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비판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87년 체제는 권력 공유와 분점을 통해 누구도 거버넌스의 정점에 오르지 못하게 하는 데 핵심이 있다. 그 결과는 다양한 이권집단의 발호 그리고 최종적으로 어떤 정치적 결단도 불가능한 현상 고착화라고 할 수 있다.6공화국에서 이익집단들은 각자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자기 영역의 전문성을 강조하면서 집단의 이익을 결사옹위한다. ‘우리도 너희 것을 건드리지 않을 테니, 너희도 우리 것을 건드리지 말라’는 얘기다. 대표적인 이익집단이 공무원, 교사, 민노총 등이지만 자격증과 라이센스를 무기로 진입장벽을 구축하는 집단은 모두 이 범주에 포함된다. 이런 이익집단들은 점차 세분화하고 다양화하는 추세이다.이런 질서는 민주화라는 대의명분 아래 어떤 구조적 변화도 불가능하게 만든다. 여러 이익집단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고 키우는 것 외에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이 없다. 설혹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이런 구조 자체를 바꿀 수는 없지만, 누군가 근본적인 구조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아무나 쉽게 막을 수 있다. <계속><출처 : 펜앤드마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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