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와 의무의 체제로 된 법률은 누군가에게 권리를 부여하면 반대당사자에게 의무를 부과하게 된다. 상반되는 이해당사자간의 권리와 의무를 조정하는 입법에 있어서는 이해당사자들에게 배분되는 권리와 의무의 내용만을 살피기 보다는, 입법이 지향하는 가치에서 비추어서 그러한 배분이 적절한가를 검토하고 권리 배분의 결과가 다른 가치와 제도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하는 신중함이 요구된다. 모든 사안에서 편가르기를 통한 분쟁의 소지를 만들어 지지를 획득하는 포퓰리즘 정치에 함몰된 상황에서 이러한 신중함과 신중함을 구현하기 위한 절차가 사라졌다. 권리를 부여받을 자와 의무를 부담할 자 중에서 어느 편을 들어야 대중에게 호감을 얻어서 인기를 얻을 수 있고 어느 편을 들어야 자기 정파가 명분을 획득할 수 있는가라는 정치적 판단이 입법의 계기가 된다.정치적 명분으로서 여론조사 결과가 거론된다. 가짜뉴스의 현상과 원인, 징벌적 배상이 가짜뉴스를 없애는 유효적절한 수단인지 여부와 언론 자유 침해와 더 큰 문제의 발생에 대해서까지 논의하지 아니한채 단순히 가짜뉴스를 없애기 위해서 징벌적 배상제를 도입해야 하는가라는 질문만을 던지는 여론조사는 적절하지 않다. 법에 의해서 실현되는 정책은 강제적으로 실현된다는 점에서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를 권력에 의해서 배분하는 것이다. 제도를 만드는 입법 과정에서는 실현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논의하고 강제적으로 실시되는 배분의 결과에 대해서 책임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여론조사가 말한다는 주장은 권한은 행사하지만 책임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가짜뉴스 대응이 민생 문제로 되버리고 언론 규제를 과제로 하는 입법이 가장 시급한 현안인 것처럼 되면서, 그러한 법안 만이 최상이고 이에 대한 반대는 개혁에 반대하는 세력의 저항으로 치부되는 것이 문제다. 제도가 구현하고자 하는 가치의 조정과 권리 배분에 대한 숙고가 없이, 찬반 논의가 정파적 대립이라고 오도되고 승부를 겨루는 것이 된다. 입법 논의가 아니라 세(勢) 싸움이다. 앞서 제기되고 진행된 논의이기에 반드시 결론을 맺어야 한다면서 반대를 악으로 규정하고 반대 목소리를 다수의 힘으로 잠재우려는 분위기는 이를 확인해 준다, 대결 구도는 다수 정파의 힘의 과시로 결말을 맺어서 돌이킬 수 없는 정치적 파국에 이르러 민주정의 기본 질서를 흔들게 된다.명분 싸움과 세 싸움으로 나아가서 결국은 힘으로 해결되는 대결만이 남은 정치는 정치 자체를 소멸시킨다.이런 양상이 오래되었기에 이미 정치가 없어졌는지 모르겠다. 적폐 청산이란 명분으로 상대편을 퇴출시키는 현 정권의 권력 운영 방식은 적폐가 아니라 정치 자체를 청산하고 있다. 절차가 사라지고 힘의 대결에 이르는 정치에 의해서 정치가 소멸되는 과정은 정치라는 이름의 재앙(災殃)이다. 정치라는 재앙은 의도적으로 진행되는 정치의 자기 파괴의 과정이다. 정치를 없애는 정치가 초래할 결과가 우려된다.<계속><출처: 펜앤드마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