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정권교체 분위기가 팽배했던 2008년 대선 당시 대중인기도가 높았던 야당 대표가 여론조사 결과를 경선에 반영한 이후 당연한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결국 여론조사결과를 후보 선출에 이용하는 것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권력만 잡으면 된다는 패권정치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다.그러면 후보 경선에 여론조사 결과는 반영함으로써 어떤 문제점이 발생할까? 여론조사는 특정 인물이나 대상· 사건들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이 어떤 정도인가에 대한 개략적 지표지 절대 가치를 지닌 수학적 지표가 아니다. 추출된 표본에서 도출된 결과는 필연적으로 실제 값과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여론조사결과는 개연성으로 추론된 값이고 통계적으로 이 차이가 의미있는가를 판단할 뿐이다. 그러므로 이를 수학적 의미로 환산하는 것은 여론조사와 통계를 크게 오·남용하는 것이다.이같은 여론조사의 한계가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 바로 현재 국민의 힘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역선택’ 갈등이다. 정당 지지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를 후보 선택에 반영하게 될 경우, 상대 정당 지지자들이 약한 후보를 선택하게 된다는 논리다.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날까?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여론조사 응답자들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응답(socially desirable response)’을 하는 경향이 있다. 즉, 주위 사람들 혹은 사회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거나 위신이 높아질 수 있는 답을 선택한다는 것이다.여기서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는 것은 주관적 판단에 기초해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민주당 지지자나 적극 지지하는 민주당 후보가 있다면 국민의 힘 후보 중에 쉽게 이길 수 있는 후보를 선택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매우 바람직한 응답인 셈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자가 당선되는 것이 국가적으로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역선택 가능성은 그 정도는 알 수 없지만 분명 존재할 수 밖에 없다.더 큰 문제는 이러한 역선택 효과가 표본을 선택하는 표집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국민의힘 주 지지층은 60대 이상 고연령층이고 반대로 20~30대 지지율은 상대적으로 크게 낮다. 이 때문에 국민의 힘 여론조사에서 20~30대는 할당된 표본을 채우기 쉽지 않고 심지어 결국 채우지 못하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실제 지난 서울시장 후보 여론조사에서는 조사 시간을 연장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적극적인 역선택 응답자들은 표본으로 선정되었을 경우 아주 적극적으로 응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20~30대의 응답률이 의외로 높게 나타난다면 역선택 현상이라고 추론해볼 수 있지만 이조차 과학적으로 검증할 방법은 별로 없다.그렇다고 역선택을 막기 위한 조항을 삽입한다는 것도 크게 효과를 발휘하기 힘들 것이다. 특정 정당 지지도를 묻고 상대 정당 지지자의 응답을 제외한다 하더라도 적극적 여당 지지자들이 의도적으로 지지정당을 위장한다면 무용지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머리가 깨진 이상한 사람’들이 맘먹고 조직적으로 역선택 행위를 조장한다면 막을 도리도 없다. 여론조사는 사람들의 태도나 의견을 판단하는 참고지표일 뿐이다. 여론조사마다 수치가 다르고 심지어 극단적으로 차이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문제는 이런 조사결과를 객관적 수량적 지표로 오·남용하고 있는 각 당의 후보 선출방식이다. 여론조사가 정확한 사실적 수치라면 굳이 대통령선거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냥 여론조사로 뽑으면 된다. 엄밀히 여론조사 결과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태도를 정량화된 제품으로 만들어 팔아 이익을 창출하는 ‘의식상품’일 뿐이다. 어쩌면 이 역시 상업화된 정치의 한 단면인지도 모르겠다.<출처 : 펜앤드마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