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대검 간부가 여권 인사 수사 자료를 야당에 찔러줬다는 고발 사주가 사실이라면 그냥 넘길 수 없는 사안이다. 조 씨가 “김웅 의원이 (고발장을) 서울중앙지검이 아닌 대검 민원실에 접수하라고 말했다”며 고발장 텔레그램 캡처를 제시하면서 각본은 그럴듯하게 짜였다. 여권은 윤 전 총장에게 치명타를 안길 절호의 기회라도 잡은 양 기세등등했다. 손 검사가 “고발장을 야당에 전달한 사실이 결코 없다”고 부인하든 말든, ‘손준성 보냄’이란 발신자 표시의 조작 가능성이 있든 말든, 국민의힘이 실제로 고발했든 안 했든 막무가내다. 기껏 기자들 불러 놓고 “기억이 안 난다”는 말만 되풀이한 김 의원의 ‘맹탕 기자회견’도 의혹 증폭에 한몫했다.인터넷 매체 뉴스버스는 이달 초 조 씨의 제보를 기사화했다. ‘윤석열 검찰, 총선 코앞 유시민·최강욱·황희석 등 국민의힘에 고발 사주’라는 제목만 보면 마치 윤 전 총장이 직접 사주한 듯한 냄새가 짙게 풍긴다. 더불어민주당은 재빨리 이를 사실로 단정하고 야권 대선후보 1위에 대한 파상공세에 돌입했고, 대검·서울중앙지검·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경찰이 모두 나서는 사상 초유의 ‘4겹 수사’가 가동됐다. 대검은 보도 엿새 만에 제보자를 공익신고자로 인정했다. 지난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아들 탈영 의혹 때의 68일에 비하면 그야말로 벼락치기다. 하지만 국회에 출석한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이 “공익신고자 지정은 권익위의 고유 권한”이라고 못 박자 대검의 월권이 무색해졌다.대한민국은 지금 정치인인지 기업인인지 아리송한 30대 초반의 젊은 여성이 정치판을 들었다 놨다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목도하고 있다. 조성은 올마이티미디어 대표가 터뜨린 이른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고발 사주’ 의혹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대선 경선 국면을 온통 휘젓고 있다. 지난해 4·15 총선 직전 손준성 당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현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이 김웅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국회의원후보에게 여권 인사들을 고발하라고 사주했다는 것이다. 손 검사가 보냈다는 고발장에는 여권 정치인과 기자 등 13명의 혐의 내용이 적시됐다고 한다.
2014년 박원순 서울시장후보 선거운동 참여로 시작된 조 씨의 정치 경력은 민주당→ 국민의당→ 민주평화당을 거쳐 4·15 총선 직전 브랜드뉴파티 창당에 나섰다가 돌연 통합당에 들어가 선거대책위 부위원장을 맡는 등 현란한 변신으로 점철돼 있다. 회사 몇 개를 운영했다지만 세금 체납과 임금 체불로 말이 많았고, 현재는 직원이 한 명도 없다. 정치성향도 갈팡질팡이다. 한때는 “문재인 대통령 짱 존경 좋아합니다”라더니 통합당 입당 직전에는 조국 사태를 비난했다. 심지어 김일성이 “민족 결속을 위한 위대한 지도자”라는 황당한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이런 조씨가 왜 우파 정당에 들어갔고, 1년 반이나 지나서 사건을 터뜨렸는지 등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이번 사건의 여파로 여당에서 내전이 벌어지고 ‘청와대 배후설’까지 불거지면서 사태는 일파만파로 번지는 모양새다. 민주당 대선후보 tv 토론에서 이낙연 전 당대표가 “장관 재직 당시 왜 손 검사를 그 자리에 임명했냐”고 힐난하자 추 전 장관 은 “당과 청와대가 손 검사를 엄호했다”며 발끈했다. 야당은 야당대로 윤 전 총장이 반대했는데도 추 전 장관이 손 검사로 교체했다며 날을 세웠다. 현 정권의 검찰 인사에서 총장은 철저히 배제된 만큼 반박은 어려워 보인다.
사건 초기에는 조 씨와 윤 전 총장이 주연이었지만 이젠 누가 주연이고 누가 조연인지 구분이 안 된다. 이번 사건은 여러모로 병풍 사건과 장자연 사건을 연상시킨다. 두 사건의 주인공 김대업과 윤지오는 현재의 여권 인사들에 의해 ‘의인’으로 칭송되기도 했지만 결국은 공작 정치의 주구로 쓰이다 용도폐기됐다. 동네방네 떠들며 상황을 한껏 즐기는 조 씨도 머잖아 같은 신세로 전락할 게 뻔하다. 문제는 공작 정치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는 정치인과 그 미몽에서 헤매는 국민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대선이 몇 달 안 남은 지금 공작 정치의 망령이 되살아나 또다시 정치판을 뒤덮는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암울 그 자체다. 더 늦기 전에 공작 정치 음모에 철퇴를 내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