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 사회는 국민이 ‘보수’와 ‘진보’의 양편으로 갈려 심한 갈등을 겪고 있다. 도대체 보수는 무엇이고 진보는 무엇이길래 이처럼 국민이 이쪽저쪽으로 나뉘어 싸우고 있는가? 여기서 ‘진정한 보수”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자 한다. 보수주의는 대를 이어 전승되는 가치와 관련이 있다. 세계사에서 보수와 진보가 극명하게 갈렸던 프랑스 대혁명을 예로 들어 보자. 프랑스 혁명이 막 일어났을 때 유럽의 계몽주의자들은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이성의 빛으로 세상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고 완전한 진보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불타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보수주의 이론가로 명성을 떨친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의 영국 하원의원 에드먼드 버크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프랑스에서 아직 자코뱅당이 혁명의 이름으로 ‘공포 정치’와 ‘피의 숙청’을 벌이기도 전에 버크는 프랑스 혁명이 혼돈과 비극으로 빠져들 것을 일찌감치 예견했다. ‘프랑스 혁명에 대한 고찰’이란 자신의 저서에서다. 프랑스 혁명 주체들은 오랜 세월을 버텨 온 제도와 관습 등을 단번에 갈아엎으려 들었다. 하지만 권력을 쥐었다고 해서 추상적 이론만으로 순식간에 사회를 바닥부터 다시 쌓아올릴 수는 없다. 사람들은 과거에서 물려받은 언어·관습·도덕·(적절한 물질적) 풍요 등 삶의 방식을 신뢰하고 있으며, 자신이 믿고 따르는 삶의 방식을 후손들에게 물려줄 것이기 때문이다. 토머스 홉스, 존 로크, 장 자크 루소 같은 영국과 프랑스 철학자들이 말하는 ‘사회계약’은 허공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프랑스 혁명에 대한 고찰’에서 가장 빛나는 대목을 읽어 보자. “사회는 실로 계약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그 계약은 살아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죽은 자, 그리고 태어날 자와도 맺는 것이다. 국가를 하루아침에 뒤엎을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하다. 세대를 뛰어넘어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인간이 여름날의 하루살이와 다를 게 무엇이겠는가!” 보수주의의 정수가 바로 여기에 담겨 있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유산 위에서 살아가며 그것을 후대에 넘겨줄 의무를 지닌다. 따라서 추상적 이념을 들이밀며 세상을 단번에 통째로 뒤집어엎을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과거에서 물려받은 유산 위에 조금이라도 더 나아진 오늘날의 세상을 만들어 후대에 넘겨주는 것을 의무로 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보수주의’라는 게 나의 소견이다. 다시 말해 진정한 보수란 재래의 풍속·습관·전통 등을 중시하고 그중 좋은 것은 그대로 지킨다는 뜻의 보수(保守)와, 낡은 것을 끊임없이 수선하고 개선하여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간다는 뜻의 보수(補修)가 융합된 보수를 가리킨다는 얘기다. 국민이 극렬한 이념 갈등을 빚고 있는 지금 우리 자신의 한국적 보수를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과연 우리는 과거에서 어떤 가치를 물려받았는가? △우리는 조금이라도 더 나아진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어떤 노력을 했으며, 어떤 문화와 관습이 오늘날의 우리를 지켜 주는가? △우리는 미래 세대에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우리 자신의 한국적 보수를 성찰해 보면 우리가 지켜야 할 보수의 가치가 분명해진다. 한국적 보수의 가치를 지키면서 미래를 향해 진보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우리의 진로가 아니겠는가!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물려받은 것을 지키려고만 하는 보수도 바람직하지 않고, 물려받은 것을 부정하고 바꾸려고만 하는 진보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보수와 진보의 갈등을 해소하고 안정된 기반 위에 국민총화를 이루면서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으로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좋은 것은 지키고 모자란 것은 향상·발전시켜 나가는 ‘진보적 보수주의’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보수주의다. ▣진정한 보수주의 △과거에서 물려받은 유산 위에 조금이라도 더 나아진 오늘날의 세상을 만들어 후대에 넘겨주는 것을 의무로 지니는 주의 ▣보수의 4대 원칙 △과거의 경험 중시 △잘못된 것을 끊임없이 보수(補修, 개혁) △도덕성 △성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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