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유행했던 트위터 민주주의라는 낙관적 용어가 기대했던 민주정의 진전은 멈춰섰고, 민주정의 존속 여부가 논란되고 있다. 개인들이 네트워크로 직접 연결된 네트워크화된 사회는 민주정의 기반을 넓히고 사회 다원화를 가능하게 하리라는 희망을 줬지만, 가짜뉴스와 음모론의 범람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혼란을 만들고 있다. 개인간의 자유로운 연결이 오히려 에코챔버에 가두고 듣고싶은 정보만 듣게 되면서 개인과 집단의 편파성을 극대화한다. 마누엘 카스텔은 네트워크 사회에서 각종 사회운동을 통한 정체성의 기획이 권력을 획득해 국민국가의 정체성을 해체한다고 주장했다. 정체성 정치는 미디어를 통해 문화의 영역으로 세력을 확장함으로써 공화정의 기반을 흔들고 있다. 분열과 대립을 이용하는 포퓰리즘의 범람과 정체성 정치의 진전은 민주정을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위기의 원인인 정체성 정치는 자신의 본연의 주장이 아니라 진보와 보수, 좌익과 우익 같은 대립되는 과거의 명분을 자신의 명분으로 채택하면서 양극화 질서에 가담해 양극화를 부추긴다. 정치적 양극화는 정치가 추구했던 가치를 고려하거나 현실의 문제 해결 또는 미래를 위한 정초를 쌓기 보다는 상대편을 이기기 위한 수단에만 몰두한다. 양극화된 질서는 모든 이를 소외시킨다. 어느 정파나 진영도 소속된 구성원의 입장을 실제로 대변하지 않는다, 양극화된 진영은 소속감이라는 효용을 제공한다. 양극화 현상은 심리적 양극화이고 정체성의 양극화다. 경제적 양극화 상황은 개선 과제라는 질문이라도 던져주지만, 심리적, 정체성의 양극화는 정신 승리를 과제로 삼기에 대립을 극단화하고 파괴를 지향한다. 제6공화국의 87체제 헌법은 제1공화국에서부터 제5공화국에 이르는 과거를 기반으로 해서 통합과 공존의 질서로 설계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화국의 헌법 현실은 끊임없는 상호 부정을 원천으로 대립을 지속해 왔고, 더 이상 공존이 어려운 정체성으로 양극화된 진영간의 전쟁 국면에 이르렀다. 오래된 한국적 구조의 사회적 지향성이 드러나고 오늘날의 민주정의 위기와 맞물리면서 공화국 대한민국은 을씨년스러운 가을을 맞이 했다. 2021년 가을은 제6공화국의 가을이다. 르네상스를 바라보면서 중세를 고찰한 호이징거의 중세의 가을은 근대로 가는 길 위에서 중세에 축적된 자산들을 기술했다. 제6공화국의 가을이 이렇게 스산한 것은 공화국의 역사를 망각하기 위한 과거의 파괴 과정 이후의 폐허 위에 서있기 때문이다. 제6공화국의 파탄은 제6공화국 이전 공화국의 기반을 거부하는데서 시작했다. 과거의 민주 대 반민주, 친일 대 반일이라는 낡은 프레임으로 공화국의 지난 역사를 애써 지우고 의도적으로 역사를 건너뛰어서 왕정국가 조선으로 회귀하게 한다. 이에 제6공화국 이후의 공화국의 역사를 아예 부정하는 반발을 초래하게 됐다. 우리의 분열은 시간에 대한 것이고, 우리의 전쟁은 역사에 대한 것이다. 현재로 이어지지 않는 시간은 없다. 전개된 역사는 인생과 같아서 부정할 래야 부정할 수 없고 부정되지도 않는 현실이다. 삶을 단절시키고 역사를 부정하는 것은 자기와 싸우는 것이다. 삶과 역사에서 받아들이고 싶은 부분만을 인정하고 나머지는 없었던 것으로 편집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 실제로 그렇게 하는 것은 현재의 자기를 부정함으로써 미래를 없앤다. 자신의 근원을 없애고 자기 자녀를 삼킨 크로노스가 결국은 몰락해 자신의 시대를 잃어버린 것처럼 역사를 재단하는 자기 기만의 괴물은 자신의 역사를 스스로 없앨 운명이다. 공화국을 세웠으나 공화국을 부정하고, 공정과 평화를 외치면서도 서슴없이 이를 파괴하는 범죄를 자행하는 괴물은 이 시대의 자화상이다. 누구나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에 서있고 지나간 자취를 지울 수 없다. 우리는 편집된 삶과 역사를 기반으로 하는 정치를 유일한 동력으로 사용하고 모든 것을 정치로 환원함으로써 모순을 극대화하면서 자신은 물론 우리 모두의 기반을 허물어 왔다. 지나간 봄을 부정하고 여름을 기억하지 않으려 하지만, 시간은 흘러가고 역사에 의해서 만들어진 모습으로 가을을 맞이할 수 밖에는 없다. 지난 30여년의 세월이 남긴 폐허같은 현실에서 제1공화국에서부터 제6공화국에 이르는 공화국의 시간들을 돌아본다. 2022년은 대한민국의 봄을 기약할 수 있을까? 2021년 지난 30여년을 뒤로하고 87 체제의 가을이 깊어간다.<출처: 펜앤드마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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