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는 현재 정책 어젠다에만 치중하고, 정치 어젠다라는 것을 갖고 있지 못하다. 정책 어젠다는 정치 어젠다의 하위 범주이다.
정치 어젠다가 전략 이슈라고 한다면, 정책 어젠다는 전술 이슈이다.
정책 어젠다는 무한대로 확산되지만, 정치 어젠다는 한 두 개의 굵직한 권력 이슈로 수렴된다.
탈원전, 최저임금, 청년 일자리, 노동개혁, 4차산업, 인공지능, 공공개혁, 북핵, 미국 일본 북한 중국과의 관계 등이 모두 굵직한 주제이지만 엄격하게 말하면 정책 어젠다이다.
비슷한 차원, 다른 범주의 이슈들이 무한하게 생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정책 어젠다에만 매달리다 보면 후보도 캠프도 정당도 중심을 잃고 헤매기 쉽다.
정치는 본질적으로 수렴과 집중이다. 시민단체와 정당의 기능도 이런 측면에서 구분된다.
시민단체는 수많은 이슈 가운데 한두 개의 해결을 위해 투쟁하지만, 정당은 그 이슈들을 모아서 권력의 쟁점으로 만들어낸다.
권력의 쟁취를 놓고 한 사회가 크게 두세 개의 진영으로 결집해 상호 대립 투쟁하는 지점을 전선(戰線)이라고 부른다.
우파는 좌파에게 현저하게 밀리는 이 전선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정책 어젠다 아닌 정치 어젠다를 잡아야 한다.
그건 권력의 문제를 정면에서 다투는 이슈여야 한다.
현재 상황에서 가장 예민한 정치 어젠다는 개헌 이슈이다.
1987년 당시 대립전선이 새로운 거버넌스 시스템 즉 87체제의 형성을 위한 직선제 개헌 이슈로 집중됐던 것과 비슷하다.
당시와 마찬가지로 지금 대한민국은 기존의 정치 거버넌스 시스템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다.
우파는 개헌이라는 정치적 고지를 선점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개헌 이슈는 많이 오염된 상태이다. 그동안 간헐적으로 돌출했던 개헌 논의가 권력구조 개편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내각제니 대통령 4년 중임제니 하는 얘기들이 모두 그런 차원의 얘기들이다.
이는 유권자 대중에게 개헌 이슈를 정치 지도자들의 권력 나눠먹기 게임 정도로 이해하게 만들었다. 개헌 이슈의 본말이 뒤집힌 것이다.
개헌의 초점은 대한민국의 미래 개척이라는 관점에서 한계에 부닥친 87체제의 대안을 제시하고 나아가 대한민국의 이념적 정당성과 정체성을 회복하는 데 두어야 한다.
분단체제의 극복을 통해 민족사적 과제인 통일과 단일 민족국가의 성립을 통해 한반도 최근세사의 가장 절박한 숙제인 근대화의 완성을 이룩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포스트87체제의 진로를 설정한 이후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가장 적절한 권력구조가 무엇인가를 논의해야 한다.
우파의 입장에서는 특히 대한민국의 이념적 정당성과 정체성을 회복하는 관점에서 개헌 이슈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우파의 개헌 이슈는 두 가지로 정리된다. 경제민주화의 폐기와 평화통일 조항의 삭제가 그것이다.
이 두 가지 이슈는 좌파의 이념적 정당성의 핵심을 이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체성 혼란과 미래 개척에 가장 결정적인 장애물이다.
이 두 가지 어젠다를 중심으로 좌파의 거대한 이권 생태계가 형성돼 있다.
경제민주화는 경제의 정치화이다.
<계속>
<출처: 펜앤드마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