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태세검토서(NPR)는 미국의 핵전략과 핵정책의 골간을 확정·발표하는 미국 정부의 최상위 전략서 중의 하나다.
당연히, 미국의 핵우산(nuclear umbrella) 정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바이든 행정부가 제5차 NPR 발행을 준비하면서 미국이 핵무기를 먼저 사용하지 않는다는 ‘핵 선제불사용(NFU: No First Use)’ 원칙과 핵무기를 미 본토 방어용으로만 사용한다는 ‘단일 목적(Ssole Purpose)’ 조항을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유럽과 아시아의 동맹국들이 술렁이고 있다.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에 ‘구멍’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토(NATO) 동맹국들의 경우 당장 러시아의 핵공격 위협에 직면한 상태가 아니며 비교적 견고한 핵억제 태세도 갖추고 있어 북핵 위협에 일방적으로 노출된 한국과는 많이 다르다.
독일, 이탈리아, 터키, 벨기에, 네덜란드 등 5개국에 미 전술핵이 배치되어 공동운용(nuclear sharing) 중이며, 영국과 프랑스는 독자 핵보유국이기도 하다.
때문에 NPR 변경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을 나라는 한국이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북한의 핵무력 증강에는 일언반구 불만을 표시하지 않은 채 한반도 종전선언·평화협정과 같은 이벤트에 열중하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을 절감하여 동맹외교를 촉구하는 대선 후보도 없다.
▣PSA, 핵우산, NSA 그리고 NFU
이런 것들이 나오게 된 배경은 핵무기비확산조약(NPT) 체제의 유지와 관련이 있다.
1970년 발효한 NPT의 최대 명분은 핵보유국 숫자가 늘어나는 것을 방지하여 인류 안전에 기여한다는 것이었지만, 기존 5대 강국(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의 핵보유를 인정하면서 추가적인 핵보유국의 등장을 막는 것이어서 처음부터 차별성 문제가 대두되었다.
즉 NPT 체제의 지속성을 위해서는 비핵국들의 안전을 보장해주어야 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적극적 안전보장(PSA)’과 ‘소극적 안전보장(NSA)’이었다.
PSA는 비핵국이 핵보유국의 핵공격을 받으면 유엔이 보호한다는 약속으로서 1968년 안보리 결의(UNSCR 255)를 통해 발표되었다.
하지만 불특정 다수 국가들에 대한 집단적 약속이어서 신뢰성이 부족했고, 핵공격을 가할 수 있는 핵보유국들이 모두 비토권을 가진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어서 ‘유엔의 보호조치’는 신빙성이 없었다. 그래서 미국은 개별 동맹국들에 대해 PSA를 약속해 주었는데 그것이 ‘핵우산’이다.
즉 핵우산은 동맹국이 핵공격을 받으면 미국이 핵응징을 가한다는 약속이다. 한국의 경우 1978년 이래 한미 국방장관회담(SCM)의 공동발표문 형식으로 핵우산 공약을 확인해왔다.
비핵국들에 대해 핵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핵보유국들의 약속인 NSA는 1978년 유엔 군축특별총회에서 발표되었다.
하지만 NSA 역시 비슷한 신뢰성 문제를 수반하고 있는데다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과 상충되는 측면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미국은 “미국과 동맹국을 공격하기 위해 핵보유국과 협력하는 비핵국은 예외로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NFU는 상대가 핵보유국이라 하더라도 상대가 핵을 사용하지 않는 한 이쪽에서 먼저 핵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선언적 약속으로 핵보유국 간의 핵전쟁을 억제하는데 기여한다.
하지만 NSA나 NFU는 NPT 체제를 거부하고 독자 핵무장을 하는 나라들이 자신의 핵보유를 기정사실로 인정받기 위한 외교적 제스쳐로 악용되기도 했다.
실제로 NPT 이후에 핵을 보유한 인도, 파키스탄, 북한 등이 모두 핵실험 이후에 그런 발표를 했다.
핵무기를 개발하지만 함부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므로 그대로 인정해 달라는 제스쳐, 즉 무탈하게 핵보유국 반열에 오르겠다는 일종의 ‘외교적 꼼수’였다. <계속>
<출처: 펜앤드마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