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는 드라마틱하다. 전세계에서 이렇게 정치인과 정당, 정치 현상에 높은 관심을 기울이는 나라도 드물 것 같다. 선거 때만 되면 전국민이 정치 평론가가 되고, 각종 모임에서 제갈공명의 천하삼분지계 뺨치는, 국가의 백년지계를 좌우하는 경륜이 펼쳐진다. 정치권 물 좀 먹었다는 분들에게서는 “아, 내가 누구누구 대통령 만든 사람이잖아?”라는 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대부분의 친목 모임에서 정치와 종교에 대한 얘기가 일종의 금기사항인 것도 역설적으로 정치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크고 그런 화제가 예민한 반응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정치는 모든 가치의 중심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는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고 한다. 한국의 정치 과잉 현상은 정치에 의해 배분되는 가치가 지나치게 많고, 다양하다는 증거이다.  심각한 것은 이런 현상이 사회가 발전하면서 점차 완화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확산, 강화,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에서 정치는 점점 내전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는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 특히 역대 대통령들의 비참한 말로에서도 알 수 있다. 이는 좌우 진영의 차이를 떠나 공통된 현상이지만 특히 우파 대통령의 경우에서 심각하게 드러난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은 4.19 이후 하와이로 망명을 떠났다가 생전에는 돌아오지 못하고 서거 이후에야 귀국이 허락됐다.  산업화를 통해 세계적인 성공 스토리를 써낸 박정희 대통령은 측근에 의해 시해됐다. 전두환 대통령은 평화로운 정권 이양이라는 업적에도 불구하고 퇴임 이후 끊임없는 정치적 소송과 시비에 휘말렸고 작고 이후에도 온갖 모욕과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임기 동안 ‘물태우’라는 별명을 얻었을 만큼 온건한 통치 방식을 선택했고 좌파와의 협력을 중시했으며 임기를 마친 후 다양한 방식으로 5.18에 사과하기도 했지만 역시 보복을 피할 수 없었다.  사후 유해가 묻힐 묘역을 찾는 것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전두환 대통령의 유골은 화장 후 연희동 자택에 안치돼 있으며 언제 장지를 찾을지 기약조차 없다. 이런 비극은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에 와서 절정에 이른 느낌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 이후 사실상 종신형이랄 수 있는 22년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17년형도 실질적으로는 무기징역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은 일종의 내란에 의한 체제 전복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순전히 정치적인 공방이나 법적인 논쟁의 결과인 것은 아니다. 국회의 탄핵 표결과 헌법재판소의 인용에 압박을 가하는 거대한 움직임이 펼쳐졌던 것이다. 당시 전국의 좌파들이 총동원되어 하루도 빠짐없이 광화문에서 대규모 시위를 전개했다.  여기에는 중도세력도 동참했지만, 좌파가 주역이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일사불란한 대중동원, 시위의 조직 및 행사의 준비 등을 보면 거대한 조직력과 사상적 영향력을 가진 집단이 탄핵의 배후에 자리잡고 있다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좌파 지식인들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촛불혁명’이라고 부르며, 세계적인 민주주의의 모델인 것처럼 선전하지만 이는 왜곡된 인식이다.  경제가 일정 수준 이상 발전하고, 사회적으로 안정된 선진국에서 이렇게 정변이 잦고 사실상의 내전 상태가 지속되는 나라는 없다. 근대 국민국가(nation state)는 단일한 헌정질서를 중심으로 고정된 국경선과 영토 안에서 주권에 자발적으로 충성하는 국민들로 구성된다. 이런 국민국가에서는 국민 모두가 동의하고 참여하는 거버넌스 시스템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웬만한 위기 상황이 아니면 헌정질서가 흔들리지 않는다.  <계속> <출처: 펜앤드마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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