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도 근대화의 한 형태이다. 하지만, 인권과 사적 소유, 기업과 시장의 자유 그리고 다양한 정치 사회적 이견을 법률적 절차에 의해 해소하는 법치주의 측면에서 심각한 맹점을 드러냈다. 사회주의는 왜곡된 근대화 이념이자 실패한 방법론이다.
우리 겨레의 현대사는 근대화의 완성을 위해 피나는 투쟁을 전개해온 과정이었고, 서구식 근대화와 소련과 중공식 근대화 가운데 어느 것이 옳은지를 검증하는 과정이었다. 해방과 분단, 체제 경쟁과 대결을 통해 어떤 체제가 역사적 정당성을 갖는가를 검증하는 투쟁이었던 것이다.
소련의 체계적인 설계 아래 전면적인 지원을 받은 북한과 달리 대한민국은 미국의 무관심과 빈약한 지원이라는 악조건 속에서 건국에 필요한 자원이 현저히 부족했고, 이를 이념적 자원을 통해 극복해야 했다. 건국의 정치이념으로 사회주의(공산주의)를 선택한 응답이 77%에 이르렀던 것은 그런 대한민국 건국세력의 정치적 취약성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는 좌우 정치투쟁에서 우파의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했다. 건국에 필요한 자원의 부족을 비정상적이고 때로는 비헌정적인 방식을 동원해 돌파해야 했다. 이승만의 사사오입 개헌이나 박정희의 10월유신이 대표적이며, 전두환의 5.18도 마찬가지다.
민주화투쟁은 건국 과정의 한계와 그늘을 극복하려는 노력이었다. 즉, 민주화는 건국 및 산업화와 함께 근대화의 내용적 완성으로 가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민주화 투쟁을 주도한 좌파 진영이 대한민국 건국의 최종 승리자로 인식되는 역사적 아이러니가 펼쳐졌다. 건국과 산업화는 민주화를 위해 부득이하게 거쳐야 했던, 잊고 싶고 부정하고 싶은 과거의 유산이 됐다.
문재인 정권의 등장은 대한민국이 북한 김씨왕조와의 정치투쟁에서 완벽하게 패배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민주화를 내세운 국내 좌파세력은 그 정치투쟁의 전위대였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 대신 김구가 사실상 국부(國父)의 위상에 올랐고, 박정희나 전두환 대신 김대중 노무현이 정치적 양심과 친근감이라는 이미지를 독점하게 됐다.
그 결과 민족사적 정통성을 다투는 전선은 우파에게 현저하게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 됐다. 이런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근현대사를 바라보는 우파의 정확한 관점을 정립해야 한다.
필자는 과거 좌파 학생운동 시절 ‘최고의 정치투쟁은 근현대사 투쟁’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었다. 주사파들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안다. 이는 우리 겨레의 근·현대사가 일본 등 제국주의 세력과 투쟁해온 역사라고 보는 관점이며, 그런 점에서 북한에 민족사적 정통성이 있다는 생각으로 연결된다.
지금도 필자가 우리의 근현대사를 바라보는 기본 프레임은 비슷하다. 다만, 이 역사가 지향하는 방향이 외눈박이 反제국주의, 反식민지 투쟁이 아니라 현재 인류사의 최전선인 근대화의 완성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는 관점을 갖게 된 것이 과거와 다른 점이다.
대한민국에는 민족사적 세계사적 과제가 주어져 있다. 민족사적 과제는 근대 국민국가(흔히 민족국가라고 부르는)의 정통성이 대한민국에 있다는 것을 현실에서 입증하는 것이다. 즉, 김씨조선 체제를 무너뜨리고 북한 동포와 영토를 근대 국민국가의 헌정질서 안으로 포섭해내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민족사의 과제인 근대화의 완성이다.
이런 민족사적 과제는 동시에 세계사적인 의미를 갖는다. 한국에서 근대 국민국가의 완성 즉 민족 통일의 달성은 현재 인류 문명의 중대한 도전이 되고 있는 중국 공산당 체제에 대해 분명한 승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대한민국에 주어진 세계사적 과제라고 본다.
대한민국은 아직 근현대사를 바라보는 목적의식적인 관점 자체가 없다. 역사의 해석을 정치 권력이 주무르고 관제 역사 교과서를 만들자는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우파는 역사 허무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허무주의와 정치적 무능력에서 벗어날 때 우파는 좌파 패권의 굴레를 깨뜨리고 진정한 국민국가의 형성과 민족국가 완성의 주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펜앤드마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