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선언을 둘러싼 괴이쩍은 현상들
통상 종전선언은 평화협정의 일부이지만, 당장 평화협정이 어려우면 종전선언을 먼저 할 수도 있다. 즉, 종전선언은 평화협정의 서문에 해당한다. 하지만, 기회가 오면 상대방을 때려눕히겠다는 흑심(黑心)을 품은 일방이 있거나 힘의 균형을 통한 상호억제가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서의 종전선언·평화협정은 반드시 깨지게 돼 있다. 그 경우 거짓 평화에 젖어 방심한 국가는 비참한 패망을 맞이하거나 대학살을 면치 못했다. 그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그래서 평화협정이나 종전선언이라는 표현이 의미하는 아름다움보다는 이면에 존재하는 위험성을 경계해야 한다.
지금 한반도에서는 이런 종전선언과 관련해 괴이쩍은 현상들이 목도되고 있다. 우선, 한국 정부가 종전선언을 하지 못해 안달이다. 대통령이 세 번씩이나 유엔연설을 통해 국제사회의 협력을 호소하는 가운데 고위 공직자들이 정치권력을 위한 ‘영혼없는 심부름꾼’이 돼 종전선언 외교로 동분서주한다. 나라를 안전과 성공으로 이끌 책무를 진 정부가 나라를 해롭게 할 수 있는 평화이벤트에 연연하는 것도 괴이쩍은 현상이지만, 국민이 그런 정부를 택한 것도 괴이쩍은 일이다. 종전선언·평화협정은 한반도로부터 미국의 영향력을 제거하기를 원하는 평양정권의 숙원사업인데도 북한이 오히려 “말을 잘 들으면 서명에 응해줄 수도 있다”는 식으로 갑(甲)질을 하고 있으니, 이 또한 괴이쩍다.
종전선언 관련 ‘한미 간 이견’ 또는 ‘합의 불발’ 등의 용어가 공식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동맹관리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는 것이었다. 한국의 공직자들이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일뿐 동맹과 주한미군 그리고 유엔사의 지위에 아무런 법적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강변하지만, 종전선언이 한국내 좌파들에게 힘을 실어주어 동맹 해체, 미군 철수, 유엔사 해체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분출하게 만들어 동맹과 한반도 안정을 해칠 수 있음을 미국 정부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요컨대, ‘종전선언 문구 최종 협의중’이라는 일부 한국언론의 보도나 공직자들의 코멘트는 한 마디로 웃기는 얘기라는 취지였다. 필자는 이 분석이 사실이기를 바라면서 애써 위안을 삼았지만, 이런 중차대한 문제들이 대선경쟁에서 주요 화두가 되지 않는 현실에 대해서는 씁쓸함을 금할 수 없었다.
▣다시 미국을 생각한다
지금의 미국은 과거의 미국이 아니며 한미동맹도 예전과 같지 않다. 동맹이완의 발단은 미국 국민을 실망시킨 한국 정부의 ‘친북·친중·탈미·반일’ 기조였지만, 미국발 원인도 만만치 않다. 미국의 변화는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면서 동맹 경시를 고수한 트럼프 대통령 이후부터 급물살을 탔지만, 바이든 행정부도 변화의 물결을 거슬릴 생각은 없는 듯하다. 과거 미국은 전작권 조기 분리와 같이 동맹을 훼손하거나 한국의 안보를 해칠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확고하게 만류하는 입장을 취했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걸핏하면 미군철수를 거론했고 한국의 지방선거 바로 전날인 2019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 북한과 평화쇼를 연출하는 무신경(?)을 과시했다. 지금 바이든 대통령은 핵문제 관련 최고위 국가전략서인 핵태세검토서(NPR)에 미국이 동맹국들에게 제공하는 핵우산과 확대억제를 약화·무력화시킬 수 있는 ‘핵 선제불사용(NFU)’ 조항과 미 본토 방어용이 아니면 핵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단일 목적(sole purpose)’ 조항을 삽입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 과거에는 쳐다보지도 않았을 ‘북한과의 종전선언’ 문제를 한미 간 아젠다로 수용하고 있다.
이제 미국은 ‘America First’를 넘어 ‘America Only’로 가는 것일까? 그래서 자유민주주의 세계의 맹주인 미국에서 좌파 한인들이 이토록 설칠 수 있게 된 것일까? 지금까지 한국이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체제 하에서 번영을 누리는데 결정적인 토양이 됐던 한미동맹도 흔들릴 것인가? 그렇다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운명은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우리의 대선 후보들도 이런 ‘대한민국 문제‘로 고심하고 있을까? 필자는 귀국행 비행기를 타면서도 뒤숭숭해진 머릿속을 정리할 수 없었다. 이 혼란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출처: 펜앤드마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