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5.7조원 규모의 올해 주택분 종합부동산세 고지서가 지난달 하순 94만7000명에게 날아들었다. 지난해보다 28만명(42.0%), 3.9조원(216.7%)이 각각 증가한 수치다. 종부세가 처음 도입된 2005년과 비교하면 인원은 3만6000명에서 26배로, 세액은 392억원에서 무려 145배로 치솟았다. 지난 16년 동안 전국 주택가격 상승 폭이 10배를 넘지 않는 것만 봐도 종부세가 얼마나 가파르게 올랐는지가 한눈에 들어난다. 올해 새로 고지서를 받은 사람 중 상당수는 ‘내가 어떻게 상위 2%에 들어갔지?’ 하며 당황해한다. 자녀 여럿이 분할 상속받거나 수십 년 살던 집을 팔고 이사하는 과정에서 이전등기가 늦어져 다주택자가 되는 등의 딱한 사정도 꽤 많은 모양이다. 부모가 남겨 놓은 시골 집의 가격이 오른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되면 장기 보유와 고령자 우대 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고율의 누진 과세를 뒤집어써야 한다. 여기저기서 조세 저항의 조짐이 엿보이자 정부는 “종부세는 국민의 98%와는 무관하다”며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고, 여권 유력 인사들도 적극 거들고 있다. 국민 2%만 해당되는 세금이라면 어찌되든 괜찮다는 소리인가? 2%가 아니라 단 한 사람이라도 억울한 세금을 내게 해선 안 된다. 정부와 여권은 대(對)국민 설득이 어려워지자 궁여지책으로 어처구니없는 셈법을 내세워 발뺌한 것이다. 이 정부는 편 가르기가 능사다. 이번 종부세 해명 역시 조세 저항을 억누르려고 국민을 98대 2로 편가르기한 꼴에 지나지 않는다. 종부세를 내지 않는 98%는 착한 사람이고, 내는 2%는 징벌을 받아 마땅한 나쁜 사람이라는 논리다. 그나마 2%라는 수치마저 완전 조작이다. 분모에는 갓난아이까지 포함하고 분자에는 토지분 과세대상자 8만명은 쏙 빼는 잔머리를 굴렸다. 게다가 2%는 납세자 본인과 법인만 센 숫자로, 가족과 주주·이사 등의 이해관계자는 나머지 98%에 넣었다. 말하자면 한 가족이라도 종부세로 신분이 나뉜 셈이다. 세입자들도 애꿎은 피해자다. 세 부담의 연쇄 전가로 인해 상위 2%만 낸다는 종부세가 실제로는 집 없는 서민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형국이다. 제조·판매자에게 부과되는 세금이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한때 정부의 정책적 권장으로 급증한 주택임대사업자는 종부세 폭탄 때문에 상당수가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게 됐고, 살던 집에서 쫓겨나게 된 임차인들의 사정도 딱하게 됐다. 아파트 수백 가구를 지어 4년간 임대한 후 분양하려던 건설업체가 종부세 부담을 못 견디고 입주 9개월 만에 조기 분양을 추진하자 입주자들은 대혼란에 빠졌다. 일부 세입자는 집값 추가 상승을 기대하고 어떻게든 분양자금을 끌어 모으려 애쓰지만 돈을 마련할 길이 막막한 세입자들은 난감하기 짝이 없다. 종부세의 목적은 ‘조세 부담의 형평성 제고와 부동산 가격 안정 도모’(종부세법 제1조)다. 종부세는 그러나 부담만 무겁게 할 뿐 형평성 제고 역할은 거의 없고, 집값 안정은커녕 폭등만 거듭될 뿐이다. 이처럼 입법 취지에 전혀 부합하지 못하는 종부세법을 그대로 존치시키는 것이 옳은가? 2중 과세도 문제다. 모든 토지와 건물에는 이미 재산세가 부과되고 있는데도 일정 가액 이상의 주택과 토지에는 종부세를 또 물린다. 전자는 지방세, 후자는 국세이지만 둘 다 보유세이므로 명백한 2중 과세다. 특히 다주택자란 이유만으로 견디기 힘든 고율의 누진세를 매기는 나라는 세계에서 우리나라뿐이다. 이런 조세 불평등은 평등의 원칙에 어긋나는 위헌이다. 우리처럼 주택공시가격을 정부가 매년 결정하는 나라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미국은 집을 처음 살 때의 가격을 기준으로 이사할 때까지 보유세를 매기고, 영국은 5년에 한 번 조정한다. 우리나라는 지난 몇 년 동안 공시가격 상승률이 주택가격 상승률을 웃돌았다. 이 같은 자의적 과세 행정은 조세법률주의 위반이요, 사유재산제의 근간을 뒤흔드는 처사다.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세금을 가혹하게 매기는 정부가 호랑이보다 무섭다)란 옛말이 떠오른다. 조세가 정당성을 잃으면 국민 저항이 일어나고, 나라의 기반을 허물어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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