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현실, 갈라진 문화 진영의 사회
21세기 초에 세계화를 평평한 세계라고 설명한 주장이 있었지만 개방된 세계는 정체성 혼란과 갈등으로 얼룩진 주름잡힌 세계다. 고립과 독립을 주장하는 폐쇄적인 문화 집단이 만개한 세상이다. 다원주의의 전개는 사회를 세분된 집단으로 나눠서 문화적 다양성의 지형을 만든다. 놀이를 문화의 본질로 보고 “놀이하는 인간(호모 루덴스)”을 설명한 호이징가의 주장이 생각나는 것은 놀이야 말로 문화현상과 사회적 유대관계를 설명하는 적절한 은유이기 때문이다. 함께 향유하는 놀이 현상은 고대의 아레나에서부터 근대의 관람 및 체육 시설까지 이어지는 놀이 공간과 네트워크상의 게임 등 콘텐츠 세상에서 확인된다.
즐거움의 공유와 이것이 형성한 유대가 보편 가치를 상실한 시대에 서로를 연결해주는 고리가 된다. 도시화가 확산되고 이주의 자유와 민주정의 진전으로 자유롭게 풍요로운 문화를 공유하는 환경과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쉽게 소통하는 현상의 결과다. 동일한 문화 상품이 국경을 넘어서 서로를 연결하고 감성을 공유하며 문화를 함께하는 집단을 형성한다. 넷플릭스와 디즈니를 통해서 유통되는 영화나 케이팝은 전세계인이 공유하는 문화가 됐다.
2. 문화정치
문화는 집단의 유지와 확장이라는 활동의 중요한 수단이다. 문화 집단이 자신의 독자적 성향과 방향성을 가지고 내부는 물론이고 외부와 투쟁할 때에 그 문화는 정치 수단이 된다. 공동체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확산시키는 교육과 선전은 문화의 형태로 전파된다. 미학은 정치 철학을 대체하고 예술은 동일성의 기준을 내세우는 광고가 되며 문화는 선동의 방법이 된다. 문화정치는 공통의 감정을 만들고 이성을 장악하며 행동을 제어한다. 혐오하거나 좋아하기 위해서 기억하고 학습하는 과정과 실천으로서의 대립을 통해서 집단 정체성이 만들어진다.
문화정치에서 문화는 정치적 수단이다. 최근 중국의 공자학원은 타문화와의 관계에서 문제가 되고 있지만 과거 중국 문화대혁명은 대내적인 문화정치 현상이다. 모택동의 권력투쟁의 수단이었던 문화대혁명기 수난사를 중국 지식인 계선림은 10년대재앙이라고 불렀는데, 외적인 것만 아니라 인간의 내면 질서를 파괴하는 지독한 재앙이었기에 적절한 표현이다. 집단 정체성을 보존하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현실을 가리고 선전 선동과 억압으로 차이를 부정하며 변화를 거절하면서 외부의 현실과 맞서서 모두를 집단의 정체성 안으로 몰아넣는 것은 타인은 물론이고 자신에 대한 폭력이며 모두에게 재앙이다.
3. 문화권력
문화의 정치화가 진행되기 위해서는 힘의 근거가 제시되어야 한다. 권력은 대립되는 것과의 대결로 행사되므로 대결의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누구나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기에 선한 일을 한다는 신념을 기초로 하여 세상을 선과 악의 대결의 장으로 만들어 적과 동지의 구분이 설정된다. 선악의 구도화를 위해서 윤리나 종교를 끌어들이지 못하는 경우에도 모두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익숙한 문화 환경을 근거로 하여서, 익숙한 것은 선하고 낯선 것은 악하다는 구분법을 만들어서 다툼의 근거로 삼을 수 있다.
세속화된 사회에서 다양한 형태의 정체성의 기획은 권리를 확보함으로써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고자 한다. 근대는 종교적, 관념적, 추상적인 권리를 구체적인 권리로 전환하고 권리와 의무의 주체로서의 지위를 창설하였다. 권리는 확장되고 세분화되면서 권리로서 확보된 지위는 힘이 된다. 문화 다양성은 문화 정체성을 권리화한다. 국가는 국민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해서 문화국가를 표방하면서 고유한 국가 정체성을 개발하고자 하지만 다원주의의 진전에 따라 국경내의 다양한 정체성의 분화는 통합을 어렵게 하고 국가는 세분화된 문화정체성 집단의 연합체가 된다. 지역 기반의 집단이더라도 오늘날의 지역성은 문화에 의해서 표방된다. 문화 다양성을 보장하고자 하는 문화복지라는 형태의 시도는 문화권리화의 최종적인 형태다.<출처: 펜앤드마이크><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