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문화전쟁
다양한 집단이 각자의 문화정체성을 확고한 권리로 주장하면서 문화집단은 권력이 된다. 문화 집단이 문화 정체성 보전과 확장으로 나아갈 때, 문화집단간의 권리와 의무의 조정이 어려워진 상황은 힘의 대결로 이어진다. 문화 연합의 국가내에서 문화 진영간의 대립관계는 중세 유럽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국경내의 다양한 문화적 정체성의 범람은 오늘날 정체성 정치의 동력이 된다. 다양성은 풍요의 시대의 산물인데 풍요의 시대의 끝에는 전쟁 발발의 위기가 도래한다.
집단 정체성의 유지와 확산을 위한 투쟁은 서로의 다름을 확인하기 위해서 대립의 장치로서 혐오와 배척으로 이어진다. 과거의 정치학은 옳음과 좋음을 구분하였지만 좋음이 옳음과 일치되는 시대에 정치는 좋고 나쁨이라는 편견의 보존이고, 자기만의 태도를 간직하려는 게으름이며, 자기 주장을 강요하는 억지이고, 다른 것과의 교류로 인한 변화를 거부하려는 고집이다. 다양성의 무지개가 아무리 아름답고 그럴듯하게 보여지더라도 서로 간의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상대방을 배척하는 대립 상황의 지속은 바깥의 세상을 인정하지 않는 고립으로서 변화의 물결을 따르지 못하면서 타인의 변화까지 저지한다.
진영화된 문화권력간의 투쟁인 문화전쟁은 문화 정체성의 대결이다. 문화 전쟁에서 문화는 프로파간다가 된다. 문화는 더 이상 교류가 아니며 설득과 양해와 화합은 없는 일방적인 선포다. 문화를 정치가 지배하고 관리할 때, 정치는 문화에 흡수되어서 소멸된다. 집단 정체성을 내세워 다른 문화와의 충돌로 인하여 공화국의 단일성과 독자성은 위기에 처한다. 정체성 집단간의 문화 전쟁의 상황에서 내일의 문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전장이 되어버린 문화는 더 이상 문화일 수 없다.
5. 다양성은 어떻게 평등 및 자유와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민주정은 문화다양성의 확대와 권리화로 말미암아서 증가하는 문화정체성 집단에 의한 정체성정치의 확산으로 정체성 혼란의 위기를 겪고 있다. 다시 권리 이전의 문화, 정치 이전의 문화로 돌아갈 수는 없다. 민주정의 현재의 질서체제로는 세계화된 도시안의 문화 집단 간의 헤게모니 다툼으로 인한 문화충돌과 문화전쟁을 대처하기 어렵다.
확장된 권리로 인한 의무의 확장 및 증대로 인하여 권리와 의무를 조정하기 어렵다. 증대하는 의무로 인한 자율성의 제약과 권리 간의 충돌로 인한 자유에 대한 제한이 증가할 수 밖에는 없고 결국은 평등이라는 균형의 달성이 어렵다. 문화 정체성의 투쟁 상황은 재정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기에 복지 문제 이상의 난제 중 난제다. 문화 다양성의 정치적 배분은 애당초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었을까? 공존을 이룰 것이라는 공화국의 제도적 틀이라는 것은 근대가 만든 가치 체계와 함께 근대의 꿈이 아니었을까?
정치가 모든 것이 아니며 유일한 해결방법이 아니고, 모든 것의 권리화가 권리로 인해서 궁극적인 행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 문화 정체성이 정치 문제로서 해결해야만 하는 우리의 본질적인 과제가 아닐 수 있다. 자기 단위에서 권력을 내려놓거나 비정치적인 방법을 추구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방법일까? 호이징가의 설명으로 돌아가서 문화를 놀이로 본다면 이러한 생각도 가능하겠다. 영구적인 놀이는 없고, 놀이를 보존할 의무도 없다. 풍요한 시대에 놀이는 언제까지나 끝나지 않을 것 같고, 무대의 장치는 현실과 유사한 경험을 주지만, 언제까지나 관람석에 앉아서 연극을 즐길 수는 없다. 연극은 언젠가 끝나고, 현실은 찾아온다. 순수한 유대관계만을 남겨두고 우리의 공간을 비워진 상태로 남겨둘 수는 없을까?
민주정의 승리 이후 기대에 찬 21세기의 평평한 세상의 꿈은 오히려 주름진 세계의 재발견이라는 현실을 맞이하였다. 어쩌면 근대의 꿈에 가려져 있었던 세상의 본래적 모습을 확인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변화를 약속하는 선거를 앞둔 시기에 오로지 자기 집단의 정파적 주장만을 내세우면서 오로지 상대방에 대한 비방으로 일관하는 정치 상황은 파국의 위험을 예감하게 한다. 극한 대결로 달려가는 정치적 내전의 시기를 살면서 언젠가는 끝날 연극에 취하지 말고 냉정한 현실을 돌아보면서 계속하여 질문을 던져야 하겠다.
<출처: 펜앤드마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