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이 최근 윤석열정부 새 복지정책 기조로 `약자복지`를 발표한 가운데, 향후 정책추진 과정에서 기존 복지체계의 구조조정을 예고해 주목된다.
특히 새 정부 들어 넉 달 이상 복지부 장관이 임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중대 발표가 이뤄지다 보니 주무부처인 복지부 패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대통령실은 민간 복지 서비스의 질을 높이겠다고도 강조했는데, 이를 ‘복지 민영화’로 해석해 공공 역할 축소에 따른 사각지대 발생을 우려하는 의견도 나온 상태다.
18일 관련 부처에 따르면 안상훈 대통령실 사회수석은 지난 15일 새 정부의 복지기조를 발표했다. 약자에 대한 지원 강화 및 기존 복지체계 통폐합, 민간 주도의 복지 서비스 고도화가 골자다.
안 수석이 내세운 새 정부 복지기조는 두 갈래로 나뉜다. 첫 번째는 일을 할 수 없거나 일을 해도 소득이 불충분한 취약계층 위주로 내실화하는 것, 두 번째는 전 국민적인 욕구가 확인되는 돌봄·요양·교육·고용·건강 등 분야의 복지는 민간주도로 고도화한다는 점이다.
안 수석은 “지속 가능한 복지 국가의 견지에서 볼 때, 자유와 연대의 정책 목표는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팍팍한 재정 형편을 감안할 때, 약자부터 튼실하게 챙겨가는 것이 중요한 이유”라고 보편복지 대신 선별복지에 무게를 실었다. 그는 “지난 10여 년 동안 전개된 우리나라의 복지 확대를 보면, 약자에 대한 집중 지원보다는 득표에 유리한 포퓰리즘적 복지사업들이 더 눈에 띄는 형국”이라며 “약자 챙기기에 앞서서 득표가 우선시되는 현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정치복지`의 민낯”이라고도 말했다.
이처럼 보편복지보다는 선별복지를 강조하고 나아가 종교단체, 학교재단, 기업 등의 민간 서비스 질을 끌어올리겠다고 강조함에 따라 사실상 복지 서비스의 민영화를 시사한 것 아니냐는 논쟁으로 이어졌다.
안 수석은 “가장 발달한 복지국가라고 말하는 북유럽 국가도 보육서비스 이런 것들이 완전 무상이 아니다”라며 “소득계층별로 일정 정도의 복지 서비스에 대해 접근권을 보장하지만 이용할 때에는 소득계층별로 이용료를 차등 부담하는 것이 대세다. 팍팍한 재정 여건 속에서 서비스 질을 높이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민관협력은 이미 거의 모든 복지국가에서 개혁의 대세”라고 설명했다.
이 발표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는 ‘복지 민영화’ 논쟁이 이어졌다.
국가와 공공 영역에서 담당해오던 복지 서비스에 대한 공공 지원이 약화될 경우 복지서비스 질이 떨어지거나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대다수를 차지했다.
구체적으로 한 네티즌은 “국가가 해야 할 일을 기업에게 줘서 돈벌이를 시키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으며, 다른 네티즌은 “복지의 민영화란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소리”라고 풍자했다. 다만 시민단체에서는 어린이집, 요양시설 등 민간 서비스가 폭넓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엄밀히 ‘민영화’라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신 국가 보조금이 투입되는 복지서비스 운영 기관에 대한 관리감독은 내실화해야만 ‘민간 주도의 복지서비스 고도화’란 표현이 성립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사회정책국장은 “전 정부는 국공립 어린이집 등 공공부문을 확대하겠다는 기조가 있었지만 새 정부는 그렇지는 않다”며 “이미 복지서비스 90% 이상이 민간이 담당하는 만큼 ‘민영화’라는 표현은 적확하지 않지만 민간 복지서비스에 대한 관리감독이 부실하고 시장 경쟁에만 맡긴다면 사실상 `민영화`에 준하는 방치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 수석은 ‘복지의 민영화’ 지적에 대해 “윤석열 정부가 ‘민간주도로 사회 서비스를 고도화하겠다’는 것은 우리나라에 이미 작동하고 있는 서비스의 퀄리티(질)을 높이는 부분에서 민간의 창의성을 빌어 (운영하겠다는 뜻)”이라며 “정부가 책임질 부분은 지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기존 복지체계 통폐합을 주요 과제로 언급하기도 했다. 중앙정부의 복지 프로그램 정책이 수백개에 달하고 지방자치단체 프로그램까지 포함하면 수천개에 달해 정리가 필요하다는 취지다.
안 수석은 “약자복지 구현을 위해 중요한 또 하나의 과제는 작금의 누더기 상태의 복지체계를 통폐합하는 일”이라며 “중복과 누락이 만연하고, 수백 개, 수천 개로 쪼개져 있어 누가 무슨 복지를 받을 수 있는지 조차 알기 힘들다”면서 약자 중에서도 다양한 복지서비스 혜택을 받는 소위 ‘복지 쇼핑’을 막겠다고도 강조했다.
안 수석은 국무총리가 위원장을 맡는 사회보장위원회의 사회보장정책의 조정기능을 강화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통상 연말쯤 회의를 여는 사회보장위원회는 현재 구성 중이며 위촉해 올해 안에 출범한다는 구상이다.
이처럼 윤석열 정부의 복지정책 기조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지만 정작 복지 정책을 관할하는 복지부는 장관이 공석이다. 오는 27일 국회 인사청문회가 잠정 예정된 가운데 대통령실이 복지정책 기조를 발표한 것을 두고 복지부 안팎에서는 `부처 패싱` 또는 `정책 드라이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이에 대해 한 복지부 간부는 “취약계층을 더 두텁게 지원하고 사전감시체계 강화, 사회보장위원회 내실화 등의 내용은 대부분 지난달 대통령실 업무보고에 담겼다”며 “안 수석이 새 정부 복지 정책을 설계한 학자 출신인 만큼 관료보다 강한 어휘를 쓴 것이 주목을 받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대통령실의 복지부 패싱 지적에 대해서는 “최근 윤 대통령이 강조한 내용을 대통령실에서 한 번 더 설명한 차원으로 받아들인다”고 말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