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무분별하게 추진되고 있는 산업단지 조성 등 개발사업으로 인해 지방자치단체들이 5조원에 가까운 채무보증을 부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사업이 좌초될 경우 지자체가 그 빚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 밖에 없는 구조여서 `지자체발(發) 재정위기`가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감사원은 지난 3~4월 지자체의 사업비 100억원 이상 채무보증 사업을 대상으로 감사를 실시한 결과 올해 4월 기준 31개 지자체와 5개 지방공기업이 민간업체(SPC)의 대출금에 대해 실시한 채무보증액이 총 4조9322억원(39개 사업)에 달한다고 16일 밝혔다.
감사원에 따르면 2008년 889억원에 불과하던 지자체의 채무보증사업은 2009~2010년 5000억원 안팎으로 늘었다가 2011년 1조3125억원으로 급증한 뒤 지난해 1조5495억원으로 증가했다.
군포시 등 10개 지자체에서 군포첨단산업단지 등을 개발하기 위해 총 2조744억원을 채무보증할 계획이어서 지자체의 전체 채무보증 규모는 증가 추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지역별로는 전남 및 전북이 1조2461억원으로 가장 많은 채무보증을 부담하고 있었으며 ▲경남·경북 9005억원 ▲경기 8003억원 ▲충남·충북 7055억원 ▲인천 5243억원 ▲강원 4240억원 ▲광주 2800억원 ▲부산 515억원 등의 순이었다.
이 같은 채무보증은 SPC가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받은 사업비에 대해 지자체가 보증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민간사업자가 빚을 갚지 못할 경우 지자체가 상환의무를 부담해야 하는 구조다.
그런데도 지자체의 채무보증이 증가추세에 있는 것은 지방채의 경우 안전행정부가 발행 한도액을 설정하는 등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지만 채무보증은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로 관리가 미흡한 것과 무관치 않다는 게 감사원의 설명이다.
지자체가 개발사업 추진에 따른 자금조달 수단으로 지방채 발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절차가 용이한 채무보증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감사원 관계자는 "이번 감사의 대상이 된 개발사업 관련 채무보증 4조9000여억원 중 안행부가 관리 또는 파악하고 있는 규모는 5000억원에 불과했다"며 "보증채무가 현실화될 경우 지자체의 재정위기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특히 22개 지자체와 3개 지방공기업은 연간 예산의 20% 이상에 해당하는 채무보증 부담을 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증평군의 경우 채무보증을 통해 지난해 예산(1638억원)의 75.4%에 이르는 1235억원을 조달, 증평2산업단지 개발사업에 썼으며 평택도시공사는 2011년 예산(899억원)의 2.4배에 달하는 2130억원을 시공사 명의로 대출받아 포승2일반산업단지 조성에 쏟아부었다.
민간이 참여한다는 이유로 재정사업과 달리 투·융자심사나 공사원가계산, 경쟁입찰 등의 절차를 제대로 마련해 놓지 않은 점도 지자체의 무분별한 채무보증을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천안시 등 6개 지자체는 천안제3산업단지 등 6개 채무보증사업(사업비 1조9000억원)을 재정 투·융자심사 절차도 없이 추진했으며 진천군 산수산업단지, 괴산군 대제일반산업단지, 평택도시공사 포승2일반산업단지 조성사업의 경우 총 139억원 가량 공사비가 부풀려진 것으로 드러났다.
또 23개 채무보증사업은 민간사업시행자를 모두 수의계약으로 선정했으며 22개 사업은 지자체가 출자지분을 초과해 채무보증을 부담, 대출금 상환 및 사업위험을 과도하게 떠안는 등 도덕적 해이가 발생했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지자체가 지방의회나 이사회 의결 등의 법적 절차를 건너 뛴 경우도 적발됐다.
광주광역시 등 12개 지자체는 지방의회 의결도 없이 1조3553억원의 채무보증을 실시했으며 인천도시공사와 평택도시공사는 미단시티 등 2개 사업을 추진하면서 이사회 의결을 거치지 않고 7373억원의 채무보증을 결정했다.
감사원은 채무보증 사업에 참여한 민간사업자의 사업비 횡령 혐의도 적발해 검찰에 고발했다.
영광군이 대마일반산업단지 조성사업에서 900억원의 채무보증을 제공한 SPC의 대표이사는 2009년부터 약 2년간 이사회 승인없이 89억여원을 무단인출해 개인적 용도로 사용한 혐의다.
하동군에서 갈사만조선산업단지 조성사업을 위해 845억원을 채무보증한 SPC의 대표이사는 2012년 8월부터 올해 4월까지 운영비 3억8000여만원을 자신의 계좌로 이체해 개인빚을 갚는데 써온 혐의를 받고 있다.
현창부 지방행정감사국장은 브리핑에서 "채무보증을 통한 산업단지 조성은 금융사 대출이자 때문에 조성원가가 굉장히 비싼 데다 수요조사나 투·융자심사 등도 전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추진하다 보니 당연히 미분양 상태로 있을 수 밖에 없다"며 "당장은 지자체장들이 공약사업이나 지역개발 명목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상당 부분 미분양으로 장기 방치돼 지방재정의 위기가 오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2005년 212개였던 일반산업단지는 2012년 497개로 증가해 공급이 수요를 초과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산업단지 미분양이 해소되지 않을 경우 장기적으로 지자체의 자금이 묶여 있을 수 밖에 없는데다 추가적으로 인접지역에서 산업단지가 계속 개발된다면 지자체의 잠재적 부실이 현실화될 것으로 감사원은 보고 있다.
감사원은 이번 감사와 관련해 안행부에 채무보증 한도액 설정 등의 제도개선을 권고하고 출자지분을 초과한 지자체에 민간업체와 위험을 분담토록 통보하는 등 총 33건의 부적절 사항을 적발해 조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