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선 - 언론인   요즘 정치권 돌아가는 꼴을 보면 넌더리가 난다. 올 정기국회는 3개월 넘도록 법안 한 건 처리하지 못한 ‘식물국회’다. 너나없이 진영논리에 빠져 허구한 날 싸움질만 한 탓이다. 민생은 안중에도 없다. 지난주 새누리당의 황찬현 감사원장 임명동의안 단독 처리에 맞선 민주당의 의사일정 전면 거부로 국회는 또다시 마비됐다. 박근혜정부 들어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법정시한 내 새해 예산안 처리는 올해에도 물 건너갔다. 명색이 입법기관이 스스로 만든 법을 11년 내리 안 지켰다.    그러고도 서로 잘났다며 ‘끝까지 해 보자’고 각을 세우다 여론의 따가운 눈초리에 등 떠밀려 국회 정상화에 가까스로 합의했다. 그러나 국가정보원 개혁 특위 설치와 국가기관 대선 개입 의혹 특검 계속 논의 등의 ‘정상화 조건’은 곳곳이 지뢰밭이라 언제 또 파행으로 치달을지 모른다. 여야가 예산안의 연내 처리에 합의한 만큼 헌정 사상 초유의 준(準)예산 걱정은 덜었으나 약속대로 지켜질지는 가 봐야 안다. 우리 국회는 말만 ‘민의의 광장’이지 실제로는 ‘정파의 전장’일 뿐이다.   이 정도면 ‘국회가 잘못하고 있다’는 여론이 무려 90%를 넘는 것도 하등 이상할 게 없다. 국민의 정치 불신이 위험수위를 훨씬 넘어섰다는 방증이다. 오죽하면 김황식 전 총리가 "국회 해산 제도가 있다면 국회를 딱 해산시키고 다시 국민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쏘아붙였겠는가. 우리 정치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추락했을까? 이유야 많겠지만 크게 보면 정부?여당의 국정 주도 능력 상실과 야당의 발목잡기로 집약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에서 ‘대통합’을 시대정신으로 내걸고 당선됐으나 지금까지의 행보는 적이 실망스럽다. 대통합 차원의 과감한 탕평책을 기대한 민심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인사가 문제다. 고위 공직자와 후보자가 줄줄이 낙마하는 통에 국정 주도 능력에 대한 신뢰도는 초장부터 금이 갔다. 특정 지역 출신이 독식한 사정 라인 역시 대통합과는 거리가 멀다는 평이다. 대선 후 1년이 다 되도록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과 북방한계선(NLL) 대화록 문제를 깔끔히 정리하지 못한 정치력 부재도 심각하다.    정치력 부재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기는 야당도 매한가지다. 정부조직법 개정부터 시작해 박근혜정부가 하는 정책과 인사는 무조건 “No"다. 새 정부와의 ‘허니문’이고 뭐고 없다. 감사원장이라는 중책을 100일 가까이 비워 두는 것쯤은 예사다. 야당의 역할을 ‘국정 발목잡기’로 착각하고 있지나 않은지 의심될 정도다. ‘민생이야 어찌 되든 정권만 옴짝달싹 못하게 하면 그만’이라는 고약한 심보가 5년 전 광우병 파동 때를 빼닮았다. 경제가 회복되면 내년 지방선거에서 불리해질 것이라는 ‘불순한 계산’에서 야당이 정권 발목잡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더 큰 문제는 ‘결과에 대한 승복’이라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외면하는 정치적 미성숙이다. 아무리 ‘적의 적은 동지’라지만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이라는 북한의 만행을 두둔한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신부를 꾸짖기는커녕 외려 박 대통령 공격에 활용하는 모양새다. 게다가 대선 후보까지 지낸 이는 한술 더 떠 ‘정부의 종북몰이’라고 비난했다니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애먼 사람을 종북주의로 몰아서는 안 되지만 반국가적 주장을 버젓이 펴는 종북주의자를 법으로 다스리지 않는다면 정부와 정치권의 직무유기에 다름 아니다.    행여 일각에서 솔솔 새어 나오는 ‘개표조작설’과 ‘대선불복론’에 편승하고 싶은 유혹에 빠져서도 안 된다. 그래 봤자 집권 기회만 멀어질 뿐이다. 진정 다음 대선에서 승리하고자 한다면 ‘표심’을 잡아야 한다. 그러려면 정권 발목잡기와 대선 불복 같은 후진 정치부터 과감히 털어 내는 게 순서다. 그런 뒤에 당당한 정책 대결을 벌여야 한다. 원래 정권이란 잡고 나면 허점을 보이기 마련이다. 정부의 실정을 맹공하며 ‘우리가 집권하면 이러저러하게 하겠다’라는 대안을 내놓고 ‘한 표’를 호소하는 게 모름지기 수권정당의 할 일이요 정권 탈환의 지름길이다.    지금이 어느 땐가? 안으로는 불황의 장기화로 민생고가 가중되고 밖으로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에 일본의 극우주의까지 겹쳐 우리 입지가 크게 위협받는 상황이다. 김정은의 후견인으로 행세하던 장성택이 실각한 것으로 알려진 북한의 권력 투쟁은 또 다른 도전이다. 모두 힘을 한데 합쳐도 감당하기가 버거운 내우외환 속에서도 정치권이 서로 다투기만 한다면 나라는 결국 거덜 나고 말 것이다.    여야는 이제 소모적 정쟁을 중지하고 국리민복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참 정치’ 복원에 나서야 한다. 여태껏 크나큰 실망만 안겨 준 정치권이 다가오는 연말연시에 국민에게 선사할 유일한 선물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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