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차범근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선배님들이 지금의 차범근을 만들어내셨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차범근(60) 전 수원삼성 감독이 `막내`를 외쳤다. 흔치 않은 광경이다. 하지만 그만큼 뜻 깊다. 60세 환갑을 맞은 차 감독이 선배들과의 자리를 마련했다. 시간은 41년을 거슬러 올라 1972년으로 향했다. 차 감독은 20일 오후 서울 평창동 자택으로 `1972년 태극전사` 선배들을 초대해 자신의 환갑잔치를 열었다.  환갑연은 개인적인 잔치다. 그러나 이날 차 감독의 환갑연은 한국 축구의 잔치였다. 그동안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던 1972년 대표팀 멤버들이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였다.  차 감독의 환갑연은 오후 6시부터 시작될 예정이었다. 선배들의 도착 시간이 다소 늦어져 기다림이 길어지자 차 감독은 잔뜩 상기된 표정을 지으며 안절부절 못했다. 그는 기대감으로 한껏 들떠 있었다.  오후 6시30분께 지하주차장으로 승합차 2대가 들어섰다. 차 감독은 하던 일을 뒤로 미루고 가장 먼저 계단을 향해 뛰어갔다. `버선발`로 선배들을 마중 나갔다.  이름만 들어도 축구팬들의 가슴을 뛰게 할 스타들이 줄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귀공자` 김정남(70)·`고독한 승부사` 김호(69)·`그라운드의 풍운아` 이회택(67)·`떴다 떴다` 김재한(66)·`아시아의 폭군` 이세연(70) 등 총 22명이 차 감독의 부름에 응답했다.  4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어색함은 없었다. 재회의 순간은 더없이 정겨웠다. "이게 얼마만이야. 정말 반가워요"·"이야, 하나도 안 변했네"·"형, 보고 싶었어." 뜨거운 포옹과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육순의 차 감독은 곧바로 `막내 모드`로 변신했다. 저녁 식사가 마련된 지하 식당으로 선배들을 모신 뒤 직접 외투를 걷어 옷걸이에 걸었다. 주변에 웨이트리스와 아들 차두리(33·FC서울)도 있었지만 일을 미루지 않았다. 가장 바쁘게 뛰어다녔다.  모든 정리가 마무리되고 1972년 태극전사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주인공 차 감독이 잔을 들고 일어섰다. 그는 "막내 차범근입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이렇게 제 초대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1972년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을 때(당시 19세) 저는 대표팀 막내였습니다. 오늘의 차범근이 있는 것은 여기에 계신 선배님들의 사랑과 도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늦었지만 60세에 접어들며 꼭 한 번 선배님들을 모시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앞으로 이런 시간을 자주 마련하겠습니다"라고 건배사를 외쳤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며 옛 이야기들이 흘러 나왔다.  차 감독은 "1974년 독일월드컵 지역예선을 앞두고 선배들이 내 성격이 너무 순하다며 쉬는 시간에 따로 불러 특별 훈련을 시켜줬다"며 "처음부터 축구를 다시 배우라며 호통을 치는 선배도 있었다. 당시엔 무서웠지만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만만치 않았던 막내 시절을 떠올렸다.  그는 이어 "훈련할 때는 엄하게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모두 선한 선배들이었다. 나와 코드가 정말 잘 맞았다"며 "1972년 대표팀 멤버들은 개인 능력도, 전체적인 팀워크도 정말 뛰어났다. 당시 월드컵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호주와 만나 1·2차전을 비긴 뒤 3차전에서 0-1로 져 본선 진출이 좌절됐는데 아쉬움이 정말 컸다. 그때 한국이 월드컵에 나갔더라면 축구 역사가 많이 바뀌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막내가 연 잔치에 선배들의 기분은 뿌듯했다.  이회택 전 국가대표팀 감독은 "차범근 감독이라고 해야 하나, 선수라고 해야 하나"라고 말문을 연 뒤 "우리가 대표팀에 있을 때 차 감독이 막내였다. 시간이 흘러 크게 성공한 뒤 이렇게 선배들을 초대해줘 고마울 따름이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는 또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을 보며 차 감독도 어느덧 나이를 많이 먹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동안 해왔듯 앞으로도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봉사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번 환갑연은 부인인 오은미(58)씨와 아들 차두리가 마련했다.  차두리는 "아버지와 함께 축구협회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관계자 분과 앉아서 옛날 얘기를 그렇게 재미나게 하시더라. 정말 좋아하시는 모습을 봤다"며 "내가 2002년 한일월드컵 멤버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아버지께도 그런 자리를 마련해드리고 싶었다"고 특별 이벤트를 준비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효자로 소문난 차두리답게 깜짝 선물도 잊지 않았다. 1972년 대표팀의 모습이 담긴 흑백영상을 대형스크린을 통해 대선배들 앞에 공개했다.  차두리는 "선생님들을 위해서 특별히 준비했다. 방송국에서 자료를 얻어 직접 편집했다"며 "선생님들이 이 화면을 보고 기뻐하셨으면 좋겠다. 자료화면을 USB에 담아 가시는 길에 선물로 나눠드릴 것"이라고 밝혔다.  1972년 축구대표팀은 한국 축구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스타군단이었다.  당시 1972년 태국에서 열린 아시안컵에서 준우승하고,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메르데카컵에서는 정상에 올랐다.  여세를 몰아 서독 월드컵 본선에 도전한 대표팀은 A지역 예선에서 이스라엘을 1-0으로 물리치고 최종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호주에 분패해 아쉽게 본선 무대를 밟지 못했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