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이 밝아오는 새벽 다섯시. 설이 지나면 여든 일곱을 헤아리는 이태곤옹은 오늘도 어김없이 태산 같은 가마솥 아궁이에 불을 당긴다. 여섯시가 조금 넘으면 어젯밤 자정너머까지 일하던 아들이 공장에 나올테다. 평생 해온 ‘메주콩끓이기’ 만큼은 따라올 기술자도 없고, 고생하는 아들에게 떠맡기지 않으리라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제나 오늘이나 한결같다.시집오자마자 일복이 터진 며느리(강영숙씨)도 작업복을 입고 나타날 터. 요즘은 겨울 방학이라 중학생이 된 손주(동건)와 손녀(현영)도 달려와 메주에 상표붙이는 일손을을 거든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대가야의 고분군과, ‘고령토’의 고장고령군. 산 좋고 물 맑은 그곳에서 전통장맛을 고집하며 대를 이어 억대부농을 일구어가는 향토기업 ‘고령메주(대표 이진호, 47세)’의 장맛은 이렇게 3대 가족의 숨결을 듬뿍 받으며 긴긴 동짓날 밤 깊어만 간다.“깨끗한 풍미와 전통의 그윽함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대구에서 국도를 타고 달성을 지나 10Km정도 거리에 위치한 ‘고령메주’ (고령군 성산면 고탄길 16-6) 의 이진호 대표의 말이다. 고령메주는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 초반 부친 이태곤옹이 전통장맛을 지키고자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야말로 가내공업형태였다. 온 가족이 매달려 콩을 끓이고, 메주를 뜨고, 건조 발효 숙성시키고, 포장을 해 시장으로 향했다. 그러던 것이 십여년이 흘러 1988년 정식으로 식품공장을 설립했다. 온 가족은 기쁨과 기대에 가득차 있었다. 그러나 대규모 생산과 상품성 높은 브랜드를 정착시키기까지는 어려움이 많았다. “형님 내외와 시집간 다섯명의 여형제 모두가 아버지의 솔선수범을 배운 탓에 구슬땀을 흘렸습니다. 작은 가마솥에서 대용량 압력솥으로 바꾸면서 기술적으로 어려웠고, 주변에 경쟁이 많아져 판로 개척도 애를 먹었습니다.” 공장 설립 십년 후 1998년 대표가 되기까지 온 가족의 노력과 위기극복과정을 얘기하는 이진호대표의 눈시울이 약간 붉어졌다. 고령메주는 올해 제2의 창업수준으로 확장이전을 했다. 부지 5백평의 터 위에 2백평 규모의 건축물을 지난해 말 완공했다. 그 안에는 자동화 된 대용량 압력솥 세개, 자동화 대차(건조용 선반) 50대를 들여놓았다. 위생적이고 현대적인 건조 및 발효실과 넓은 포장실도 갖췄다. 지난 공장과 비교해 배 이상의 생산 능력은 물론 더욱 위생적이고 효과적인 시설이다. 이 곳에서 대표 브랜드인 ‘재래식메주’는 물론 알메주, 한식된장, 조선간장, 청국장분말들이 소담스레 출하된다.마침 이곳을 방문한 김만수 성산면부면장은 “자연부락인 대월지역은 자연 풍광이 뛰어난 청정지역으로 전통발효식품 제조에는 최적입니다. 이진호대표 가족의 노력이 많은 결실을 맺기를 바랍니다.”고 덕담을 건네며, 향토브랜드인 ‘고령메주’ 자랑에 여념이 없다. 이진호대표는 시군 차원의 산업벨트구축이나 공동브랜드 개발 및 활성화도 적극 참여하겠다고 즉석에서 화답했다.지금은 장담그는 철이라 재래식메주 공급에만 손이 모자란다. 하지만 비수기에 접어들면 이진호가족은 인근 40여마지기의 콩밭으로 일손을 옮긴다. “정부에서 권장하는 ‘대원콩’을 주로 생산합니다. 굵고 맛이 고소합니다.”고 원료콩을 소개하는 이진호씨. 요즘은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웹페이지(키워드 ‘자연과 콩’)를 이용한 공동구매와 콩경작 재배기술 정보를 말한다. 이런 노력들이 100% 국산콩 원료사용과 전통 맛의 세계적 브랜드화의 밑거름이 되어 억대부농실현은 물론 ‘이웃과 함께 잘살기’의 모범 사례란다. “아버님의 가훈은 ‘열심히 일하자’입니다. 저의 사훈은 ‘최선을 다하자’입니다.” 이대표의 말은 이처럼 단순하다. 식품제조는 말이 아니라 품질과 성실로 보여주겠다는 각오가 묻어난다.회견 과정을 지키보던 김만수부면장은 “향토 상표인 고령메주가 지금까지 품질면에서 인정을 받았습니다. 첨단 설비를 갖춘 지금부터는 상품성을 더욱 높이고 홍보를 강화해 반드시 지역의 자랑거리가 되는 기업이 될 것”이라고 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