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일선 경찰관이 매년 밥값을 쪼개 마련한 돈을 10년째 기부해 한겨울 우리 주변을 따뜻하게 하고 있다. 따뜻한 손을 내민 주인공은 서울 강남경찰서 소속 오학래(51) 경위. 그는 지난 연말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지난 한 해 밥값을 아껴 마련한 110만원을 서울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이웃돕기 성금으로 쾌척했다.  오 경위의 밥값 기부는 2007년부터 시작됐다. 지난해에는 1일 1식을 결심하고 아침이나 점심을 아껴 110만원을 기탁했다. 지금까지 공동모금회에 기부한 금액은 모두 663만9025원에 이른다.  그는 "이웃의 배고픔과 고통은 직접 굶어봐야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마음을 비운 상태에서 배가 고파보니 아르바이트 3~4개를 하며 힘들게 살았던 대학 재학 시절이 떠올랐다.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됐다"고 회상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탓에 오 경위의 생활도 녹록치 않았다. 초등학생때 서울로 이사 온 그는 친척집을 전전하며 옮겨 다녔다. 청소년시절 아르바이트는 일상이었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학교 체육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하지만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서도 늘 이웃과 함께 한 조부모 밑에서 자란 덕인지 나눔의 가치를 자연스레 배웠다. 오 경위는 "조부모 주변에는 사람들과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항상 베풀면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런 분들 밑에서 자라다보니 자연스럽게 나눔의 미덕을 알게 된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대학생때 등록금을 보태준 스승의 사랑도 지금의 오 경위를 만들었다. 스승이 사는 아파트에 신문 배달을 한 그는 밖에 버려진 케이크를 먹다 외출 준비를 하고 있는 교수와 마주쳤다. 내색하지 않던 그였기에 스승은 적지않게 놀랐고 오 경위의 형편을 들은 스승은 제자를 안으며 펑펑 울었다고 한다. 그는 "하루하루가 힘들었지만 고통 속에서도 항상 나를 도와주는 손길이 있었다"며 "스승의 도움을 받고는 이 고마움을 다른 이에게 전달하고 싶었다"고 기억했다. 오 경위의 밥값 기부는 10여년 됐지만 나눔 활동은 경찰 배지를 달자마자 시작됐다. 1989년 8월5일 무도 경찰로 특채돼 경찰청에서 근무를 시작한 지 두 달 뒤부터다.  그는 "술에 취해 소리치고 난동을 부린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는데 현행범이 아버지와 닮았었다"며 "사건을 처리한 후에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돕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고 떠올렸다. 어렵게 홀로 아들을 키운다는 것을 안 오 경위는 그 후 달동네 집을 직접 찾아가 생필품을 건네며 따뜻한 위로를 건넸다. 근무지 경찰서에서는 유치장 수감인들의 교화를 위해 매일 아침 좋은 문구를 들려주는 등 멘토로서 역할도 자처했다. "인간은 누구나 죄를 지을 수 있다. 지내는 동안 여러분과 친구가 돼 드리겠다"는 말에 유치인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유치인의 의류를 세탁해주는가 하면 사회 돌아가는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도록 아침마다 조간신문을 가져다 유치장 안으로 넣어주기도 했다. 현재는 경기 성남시 신흥동 참사랑의 집이며 소년소녀 가장돕기, 독거노인 돕기, 각종 복지시설 방문 봉사, 무료급식 등 도움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간다. 수많은 나눔 활동 중 임대료 지원으로 장애인 부부를 살린 일은 평생 잊지 못한다. 월 임대료와 전기료 석 달 치 50만원을 내지 못해 거리로 내몰리게 된 장애인 부부의 자살 시도를 막은 것이다. 그는 일단 목숨부터 살려 놓고 봐야겠다 싶어 반지를 팔아 대신 임대료와 전기료를 대신 내 목숨을 살렸다. 공직생활 20년이 지났지만 번듯한 집이나 차량도 없다. 대신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개인 기부자들 가운데 1000만 원 이상 기부자 회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공동모금회뿐만 아니라 매달 월급의 3분의 1 정도인 70만~100만원을 떼 20여개 사회복지 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리더나눔클럽 2000만원 회원 가입과 1억 원 기부가 목표다. 그에게 왜 봉사를 하느냐고 물어보자 "즐겁고 행복하니까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기부와 봉사활동은 "시골 다락방에 숨겨 놓은 꿀을 몰래 먹는 것처럼 짜릿하다"고 비유할 정도는 그는 나눔 중독자다. 오 경위는 "즐거움과 행복 때문에 나눔을 계속하게 된다"며 "주의의 어려운 분들을 보면 부모 같고 자식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시신·장기 기증을 비롯해 연금도 사회 환원키로 다짐하고 있다. 가지는 것 없이 사는 무소유를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오 경위는 "이미 내 몸도 기증하기로 한 마당에 무엇을 못하겠느냐.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게 인생 아니냐"며 "40년 공직생활하며 국가로 받은 것 국가와 사회를 위해 환원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담담해 했다. 이어 "10년 후에는 경찰 생활을 마무리하고 퇴직하는데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는 것이 꿈이다. 정말 따뜻한 복지관을 운영하고 싶다"고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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