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가 고령화되면서 치매 환자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이들을 돌보는 가족들의 삶도 덩달아 피폐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때문에 경제적 어려움으로 힘겹게 살아가거나 가족끼리 불화를 겪는 일도 나타난다. 심지어 살인이나 자살과 같은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는 일도 벌어진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치매 노인 요양 시설을 확충하고 환자 가족을 돌보는 제도를 정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치매가 뭔지…` 부모-부부의 연(緣)까지 끊는다 6일 오전 9시20분께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 있는 자택에서 그룹 `슈퍼주니어` 이특(31·본명 박정수)의 아버지(57)와 조부(84), 조모(79)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이특의 아버지는 15년 이상 부모를 극진히 모시고 살았다. 하지만 최근 부모가 치매를 앓기 시작했고 자신도 우울증에 시달렸다. 아버지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유서에는 `부모님을 내가 모시고 간다`는 내용이 쓰여있었다. 경찰은 박씨가 부모를 목 졸라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망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치매는 부모 자식간의 연 뿐 아니라 부부의 연도 끊어 놓는다.  2012년 10월19일 서울 영등포구 한 아파트 거실에서 이모(79)씨는 치매를 앓던 아내 조모(당시 73세)씨가 자신에게 폭언을 하자 목 졸라 숨지게 했다. 이씨는 치매에 걸린 아내를 정성껏 보살폈다. 하지만 증상이 점점 악화되면서 가족들에게 폭언하는 횟수가 늘어나자 이씨는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다. 이대로 있다간 가족 모두가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날 이씨는 폭언을 하는 아내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법원은 이 같은 상황을 참작해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치매 환자 7년 새 680% 증가…연간 진료비 1조 육박 최근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치매 환자도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치매환자 진료에 1조원이라는 비용이 투입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새누리당 김희국 의원이 지난해 10월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치매환자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치매 환자는 57만6000여명으로 집계됐다. 2005년 8만5000여명이던 치매 환자가 7년 사이 680% 증가했다. 2009년 44만5000여명이던 치매 환자는 2010년 56만9000여명, 2011년 50만4000여명, 2012년 53만4000여명으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도 보이고 있다. 2012년 전국치매유병률조사에 따르면 2024년의 치매 환자는 100만명이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치매와 관련해 연간 진료비가 1조원에 다다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앞으로 치매 환자가 급증하면서 건강보험 진료비도 가파르게 상승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정부의 치매 대책 발표…현실은 병원 수-예산 `미흡` 이에 따라 정부는 치매를 조기 발견하고 예방하기 위한 대책을 내놨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012년 7월 김황식 당시 국무총리 주재로 국가 정책조정회의를 열고 `제2차 국가 치매 관리 종합 계획`을 확정했다. 특히 공립요양병원 등을 치매 거점병원으로 70곳을 지정하고 정신·행동에 이상이 있는 치매 환자를 위한 시범운영을 약속했다. 하지만 공립치매시설은 2013년 11월 기준 7곳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치매 관련 인프라는 지방재정에 따라 편차가 크고 `복지 사각지대`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경기도가 노인 인구 비율 8.9%에 치매 관리비 예산이 44억인 것에 반해 강원도는 노인 인구 비율 15.5%로 가장 높지만 예산은 8억5000만원에 불과했다. 제주도 역시 노인 인구가 전체의 12.8%를 차지하는데도 예산은 3억7000여만원에 그쳤다. 서울시는 치매 인정환자 6만7000여명 가운데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상 건강보험공단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4급 이상의 치매 노인이 절반에 가까운 15만40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요양 시설·인력 확충 必…치매 노인 가족도 돌봐야 현행 제도 상 치매 환자를 요양 시설에 맡기는 경우 전체 비용의 20%에 달하는 비용을 가족이 부담해야 한다. 이 금액이 한 달 50만~60만원에 달한다. 국가에서 제공하는 `재가(在家) 서비스`를 받는다고 해도 요양보호사로부터 한 달에 15여일, 하루 2~4시간 서비스만 받을 수 있다. 이마저도 전체 비용의 15%는 가족이 부담해야 한다. 요양보호사 교육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일본의 경우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1900시간 이상 교육을 받는다. 독일은 2년6개월 이상 교육을 받아야 요양보호사 자격을 갖출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240시간 정도만 교육 받으면 요양보호사 자격증 취득이 가능하다. 해외의 경우 치매 가족을 정기적으로 상담해주는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거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치매 노인을 돌보는 기본적인 요양 시설과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치매 노인을 돌보는 가족이 정신적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진수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처음에는 가족들이 치매 노인을 돌보려 애를 쓰다가 경제상황이 계속해서 안 좋아져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며 "현재 0.5% 미만인 장기요양보험요율을 1%까지 올려 재정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요양보호사 자격 요건을 더 엄격히 하고, 이미 자격증을 딴 사람들의 재교육도 필요하다"며 "정신적 고통을 받는 치매 환자 가족을 상담해주는 제도 등 가족을 고려하는 제도도 정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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