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수 - 언론인  지방자치 도입은 권력자들이 손에 쥔 `파이`를 `두루` 나눠줘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첫 발은 내딛기가 쉽지 않았다. 한 번 손아귀에 쥔 권력을 좀처럼 내놓지 않으려는 속성은 동서고금 역사가 쉽게 증명해준다. 정치인 김대중은 이런 지방자치와 권력의 함수 관계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3당합당으로 권력이 빵빵해진 1노2김(노태우, 김영삼, 김종필)이 지방자치를 차일피일 미루는 기미를 보이자, 김대중은 무기한 단식이라는 초강수를 뒀다. 결국 13일만에 항복을 받아냈고, 지방자치는 1992년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이후 권력과 지방자치는 곳곳에서 끊임없는 다툼을 벌이게 된다. 내무부가 가장 극명한 경우다 시도지사는 물론 시장·군수·구청장과 경찰서장 인사권을 쥐며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곳이다. 인사권이 국민에게로 가자 갑자기 `껍데기 부처`로 전락했다는 자조가 내부에서 흘러나왔다. 심지어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 대립관계에 있던 노무현 대통령 치하의 행정자치부(내무부에서 개명) 간부들은 툭하면 서울시 간부들과 싸움을 해야 했다. 행자부 관료들은 예전같으면 `꿈도 못꿀 일`이라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꼼수도 나왔다. 대표적인게 경찰과 소방방재분야다. 권력자들에겐 매우 중요해 함부로 내줄 수 없는 경찰은 지방자치 논의 자체가 사라진지 오래다. 하지만 국가적인 수요 폭증으로 갈수록 인력과 예산이 증가해 부담이 큰 소방방재는 권한의 일부를 지방자치에 떠 넘겼다. 지방자치의 중심축인 교육도 마찬가지다. 2명의 민선 서울시교육감(공정택·곽노현)이 모두 돈 문제로 중도 퇴진하자 국회의원(권력자)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서울시교육감의 막강한 권한을 알고 있는 권력자들은 진입문턱을 낮추기 위해 후보자격에 교육경력을 없앴다.(지방자치법 개정 ) 벌써 정치인 출신의 교육감 후보 누가, 누가 출마한다는 소리가 교육계 안팎에서 구체적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정치권의 지방자치법 개정에 대해 교육계는 헌법의 정신을 훼손하고, 교육자치를 말살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평소 `물과 기름`으로 교육현안에 대해 사사건건 다른 처방을 내놓던 교총과 전교조마저 문제의 심각성을 공동 인식하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을 정도다. `무늬만 지방자치` `기형적인 지방자치`라는 평가가 나올 만하다. 국회의원들에게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의원 공천권은 지갑속의 `고액권`과 다름 없는 보배다. 당사자들이 자존심 상할 일이지만. 효율적인 지역구 관리를 위해서는 긴요한 `절대 존재`들이다. 경선 등 투명한 절차를 거쳐 나름대로 공정한 공천권을 행사하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국민들은 공천을 둘러싼 검은 돈거래 뉴스를 질리도록 보아 왔다. 그래서 선거때만 되면 기초단체장 정당공천폐지는 단골메뉴 였지만 끝나기만 하면 여야 권력자의 `담합`으로 슬며시 사라지곤 했다. `그러면 그렇지 자기들 밥그릇 공짜로 내놓을 리가 없지`라는 빈정이 늘 뒤따랐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경쟁했던 박근혜·문재인·안철수 후보도 마찬가지였다. `쿨`하게 기초단체장 정당공천 없애겠다고 했다. 그러나 화장실 갔다온 뒤엔 다르다. 문재인은 민주당 당론으로, 안철수는 19일 기자회견으로 이 문제를 털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의 `턱없는 정치공세`라는 논평은 궁색하다. 국민여론조사도 대부분 압도적인 수치로 정당공천 폐지를 지지하고 있다. 이제 박근혜 대통령의 답변만 남았다. 정당공천제 폐지는 박 대통령의 다른 주요 공약들(기초노령연금, 대학반값등록금,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무상보육 등)처럼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박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되는 일이다. 새누리당은 정당공천폐지가 부작용이 더 많다는 입장이지만, 박 대통령이 국민에게 공약했던 것인만큼 `단 한 번`만이라도 약속을 지키는 모습을 보고 싶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