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갈 곳 없는 노숙인을 돕기 위한 쉼터를 운영해 온 대표가 식자재 납품업자와 짜고 서울시로부터 지원받은 급식보조금 1억여원을 빼돌려 충격을 주고 있다.서울경찰청은 26일 서울시가 노숙인 쉼터에 지원하는 급식보조금 1억2390만원 상당을 횡령한 쉼터 대표 A(54·여)씨를 업무상 횡령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또 A씨가 급식보조금을 빼돌릴 수 있도록 도운 회계담당자 B(34)씨와 식자재 납품업자 C(51)씨, 위장거래를 할 수 있도록 신용카드가맹점 명의를 대여한 A씨의 조카며느리 D(33·여)씨를 업무상 횡령 및 여신전문금융업법위반 혐의 등으로 불구속 입건했다.경찰에 따르면 A씨는 2009년 3월부터 작년 10월까지 식자재 납품업자인 C씨와 짜고 식자재 납품 사실이 없음에도 물품거래가 있었던 것처럼 직불카드 사용 내역을 조작했다.이 같은 수법으로 매달 적게는 175만원에서 많게는 195만원까지 총 75회에 걸쳐 1억2390만원을 빼돌렸다.
회계담당자인 B씨는 A씨의 지시로 매출전표와 거래명세서 등 증빙서류를 허위 작성했다. B씨는 심지어 노숙인들이 금융기관에 돈을 맡길 수 없어 대신 보관해 둔 700만원 상당을 가져다 쓰기도 했다.
경찰은 작년 9월 서울시 노숙인 쉼터 대표가 속칭 `카드깡`을 통해 급식보조금을 빼돌린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A씨는 2000년 경기도 양평에 노숙인 쉼터를 설립해 2003년 서울시에 매각한 뒤 서울시와 `관리운영 위탁계약`을 체결하고 매년 3억원 가량의 급식비를 지원받아 운영해 왔다.
서울시는 급식보조금의 투명한 집행을 위해 별도의 식자재 납품업체를 선정해 직불카드를 이용해 거래하도록 지침을 마련했지만 A씨는 오히려 이점을 악용했다.
A씨는 조카며느리인 D씨의 이름으로 식자재 유통업체를 만들었다. D씨는 신용카드 가맹점을 개설하고 차명계좌를 만들어 주는 등 범행을 도왔다.
더욱이 카드체크기를 집에 보관하며 마치 정상적인 직불카드 거래를 한 것처럼 결제해 서울시의 눈을 속여 왔다.
경찰은 A씨가 `카드깡`을 통해 급식보조금을 현금화해 직접 식자재를 구입하고도 위장 납품업체를 만들어 업체 마진 명목으로 이익을 챙기고 검수서류 또한 허위로 작성해 착복한 금액을 특정할 수 없도록 하는 등 치밀한 수법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A씨는 지자체가 사회복지시설을 민간에 위탁하며 보조금을 지원해 운영하는 제도를 악용했다"며 "이렇게 빼돌린 보조금을 개인채무변제와 생활비 등으로 사용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A씨 측은 이 같은 사실에 대해 완강히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A씨의 법률대리인은 "경찰의 수사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면서 "보조금을 전부 실제 식자재 구입에 사용했고 경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기각된 것만 봐도 어떻게 평가되어야 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서울시는 이번 사건과 관련 노숙인 시설 운영 전반에 대한 감사에 나서기로 했다. 범죄 행위가 확증되면 해당 시설과의 관리·운영 위탁계약을 해지하고 횡령한 지원금에 대해서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