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효극 / 언론인염수정 새 추기경은 서울 명동 천주교 서울대교구청에서 열린 추기경 임명 발표식에서 첫 소감으로 “목자가 해야 할 첫 직무는 뿔뿔이 흩어져 있는 양들을 모두 하나로 모으는 것”이라며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는 교회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19일 첫 사목활동으로 서울 은평구 구산동 노숙인과 장애인 보호시설 `은평의 마을`을 찾아 주일미사를 집전했다. 프란치스코 새 교황은 전 세계 사제들과 교인들에게 이렇게 사회갈등을 치유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데 적극 나서라고 권고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첫 권고문은 영문 PDF파일 기준으로 224페이지에 달하는데 챕터2( 43~87P)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복음의 기쁨’을 전파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지 등을 설명하는데 할애하고 있다. 교황은 화제가 된 챕터2의 첫머리에서 사제와 교인들은 우리시대의 현실을 직시해야할 막중한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현실을 방치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비인간화를 촉발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교황은 먼저 ‘살인하지 말라’는 여섯 번째 계명을 거론하며 ‘배제의 경제(an economy of exclusion)와 불평등’을 용납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배제의 경제와 불평등이 바로 죽음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 사례로 든 비유는 교황의 어록으로 회자되고 있다. “어떻게 증시가 2포인트 떨어지면 뉴스가 되고 노숙자가 거리에서 죽어가는 건 뉴스가 되지 않는가. 어떻게 사람들이 굶어죽어 가는데 음식을 내다버리는 일을 참고 지켜볼 수 있는가” 교황은 이어 ‘배제’는 경제적 착취나 억압이 아닌 새로운 무엇, 즉 왕따(outcast)나 잉여(remnants)현상이라는데 주목한다. 세계 곳곳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아예 경제활동에 참여조차 못하는 새로운 현상이 위기의 핵심이라는 걸 꿰뚫어 본 것이다. 경제가 성장해야 온기가 사회계층에 골고루 퍼진다는 ‘낙수이론’이 사실로 확인된 적이 없다는 걸 지적한 뒤 교황은 경제위기의 배경엔 돈을 우상화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부정하는 `황금송아지 숭배`가 자리 잡고 있다는 걸 지적한다. 결국 경제위기의 근본적 원인은 인간을 목적이 아니라 소비의 한 단위로만 다루는 소비사회의 경제시스템 그 자체라는 것이다. 이 경제 시스템은 무절제한 소비를 부추기고 경제활동에서 배제된 잉여들이 불평등을 더욱 견딜 수 없게 만들어 마침내 폭력사태를 부른다. 폭력으로 사회조직이 와해되는 걸 막으려면 더 많은 무기가 필요하고 더 많은 무기는 더 큰 폭력사태를 부른다. 또 교황은 불평등은 경제시스템 자체에서 빚어지는데 `교육이 빈곤의 해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강자들이 자신의 부패를 감추고 약자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 위한 변명이라고 지적한다. 오바마 미 대통령이 국정연설에서 "수입 불균형이 우리시대의 가장 큰 이슈"라고 말한데 이어 허핑턴포스트가 올해의 어젠다로 `불평등과 명상`을 선정하고 지난 주 다보스 포럼에서 이것을 주제로 김용 세계은행 총재와 인터뷰를 가진 것 역시 교황의 권고문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용총재는 이 인터뷰에서 `세계최고 갑부 85명의 재산이 인류 하위 2분의 1의 총재산과 맞먹는다`는 옥스팜 리포트를 인용하며 수입격차 해소가 세계은행의 핵심과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우리나라 청년실업률은 OECD국가 중 맨바닥층이고 시간당 최저임금 역시 주요 선진국들과 비교했을 때 절반에도 못미친다. 이런 국내현실 탓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지적은 귀를 더 쫑긋하게 만든다. 우리가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피부로 느끼지만 글로벌 경제현실이 그 모양인데 어쩔 수 없지’라며 쉽게 체념하던 문제들에 대해 교황은 진지하게 성찰하고 반성하고 해결책을 찾으라고 권고하고 있다. 그걸 떠나서라도 `나의 현실인식이 너무 부정적인가` 부지불식간에 자기검열을 하던 사람들에겐 교황이 쓴 첫 권고문의 챕터2는 큰 위안을 줄 것이다. 어떤 종교를 갖고 있든 혹은 무신론자이더라도 교황이 청년층의 `잉여현상`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고 비정규직 임금차별, 작업현장에서의 비인간적 대우문제뿐 아니라 `해고는 살인이다`라고 적힌 플래카드에 스며있는 실직자들의 고통까지 속속들이 이해하고 있으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은 큰 위로가 될 것이다. 기도뿐이랴. 교황은 정치인들과 슈퍼리치들에게 여섯 번째 계명을 어기지 않으려면 ‘배제와 불평등’ 해소에 적극 나서라고 끊임없이 설득하고 있다. 사제들과 평신도들에게도 이런 설득에 동참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오는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이 성사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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