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의 박지연(36) 소령은 `최초의 여성 공군사관생도`, `최초의 여성 전투기 조종사`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공군사관학교 49기 출신인 그는 현재 `최초의 여성 전투기 편대장`으로 1전투비행단 189비행교육대대의 1편대장으로 근무하며 후배 전투조종사들을 교육하고 있다. 비행교육에 있어서는 엄격하고 냉정한 박 소령이지만 집에 돌아가면 가정에 충실한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된다. 한마디로 그녀는 공군의 대표 `워킹맘` 조종사다. 처음부터 박 소령이 전투기조종사의 꿈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박 소령은 일찍 아버지를 여읜 후 어려운 가정형편에서 대학을 지원해야 했다. 그러던 중 공사에서 최초로 여성 생도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공사에 지원하게 됐다.  "공사 입교한 뒤 생활은 녹록치 않았어요. 남성에 비해 체력적 조건이 부족하다보니 같은 훈련을 소화해내야 하는 것이 처음에는 많이 버거웠죠"  박 소령은 공사생도 생활이 많이 힘들었지만 `최초의` 수식어에 자부심을 갖고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땀 흘리며 몸을 지속적으로 움직이다보니 체력이 점차 좋아져 2학년부터는 어느 남자 생도들과 다름없이 모든 훈련에 낙오하지 않고 참여할 수 있었다.  지금도 그는 16년 전의 공사 생활을 떠올리며 그 힘든 시간을 극복했던 것이 지금까지 자신을 지탱해준 힘이라고 생각한다. 박 소령은 `최초의 공군 전투기조종사 부부`이기도 하다. 남편인 정준영 소령과는 공사 49기 동기로 생도 2학년 때부터 6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했다.  부부 군인은 가급적 동일부대에 근무하도록 배려하는 공군 인사관리 정책 덕분에 현재 정 소령은 1전투비행단에서 표준화평가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정 소령은 "아내도 같은 분야에 근무하다보니 서로의 관심사나 고충을 쉽게 나눌 수 있다"며 조종사 부부의 장점으로 꼽았다. 하지만 박 소령은 "군인 아내를 만난 탓에 더 많은 내조를 받지 못하는 남편에게 미안한 감정이 든다"고 말했다. 바쁜 근무 스케줄 속에서도 박 소령은 두 아이 어머니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전투기조종사로서 아이를 출산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현명한 시간관리로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었다.  첫 아이 임신 때는 초급장교양성과정 교육을 받으며 비교적 자유로운 시간을 보냈고, 출산 후에는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과정을 밟았다. 한 손에는 책가방, 한 손에는 유축기를 들고 다니며 15개월이나 모유수유를 했다.  둘째는 대학원 한 학기를 휴학하는 동안 출산했다. 박 소령은 출산 후 떨어진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각별한 몸만들기 운동을 했다. 이 덕분에 성공적으로 조종 현장에 복귀할 수 있었다. 현재 박 소령은 비행교육대대의 교관으로 근무하기 때문에 비상대기를 서지 않는다. 출퇴근 시간이 비행시간에 맞춰 유동적이지만, 상대적으로 주말에는 가족과 보낼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 평일에는 친정에서 아이들을 돌봐주고, 주말은 최대한 아이들과의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박 소령은 자신과 같이 군대 내에서 복무하는 여군들에게 "배려를 바라지 말고, 항상 조직의 인사이드에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물론 남성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군대 안에서 일정 부분 여성에 대한 배려와 혜택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을 당연하다고 여기면 안 된다는 것이다.  또 그는 "조종사로서 임신과 출산 등으로 남자 동기들에 비해 비행시간과 경력이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충분히 자신의 노력으로 그 부분을 메울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박 소령은 미래를 준비하는 여학생들에게 박 소령은 진심으로 군인의 길을 추천한다. 군내 다양한 분야에 이미 많은 여군들이 포진해 있으며, 국가를 지킨다는 사명감 및 자긍심과 더불어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육아와 가정생활을 보장하는 많은 혜택 또한 직업군인으로서 여성에게 매력적인 부분이다.  박 소령은 "나는 지금도 군인이라는 단어가 지닌 가치를 만들어가는 중이다"고 말한다. 경력단절과 같은 여성들의 불리함을 딛고 진정한 군인이 되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는 박 소령은 일과 육아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여군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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