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장거리 간판` 이승훈(26·대한항공)의 발끝에서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첫 메달과 마지막 메달이 탄생한다. 이승훈은 오는 8일 오후 8시30분(한국시간) 러시아 소치의 아들러 아레나 스케이팅 센터에서 열리는 2014소치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0m에 출전한다. 이번 올림픽에서 5000m와 1만m의 개인 종목을 뛰는 이승훈은 단체 종목인 팀 추월까지 더해 장거리 선수 가운데 가장 많은 경기를 소화한다.
공교롭게 경기 일정이 짜여졌다.
이승훈이 스피드스케이팅 한국 대표팀 선수 가운데 가장 먼저 경기를 시작해 가장 늦게 마무리한다. 8일 남자 5000m를 시작으로 18일 오후 10시 남자 1만m, 22일 오후 10시51분 남자 팀추월 결승에 출전할 예정이다.
이승훈이 첫 단추를 어떻게 꿰느냐에 따라 이어 출전하는 선수들의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 이승훈의 출발이 좋다면 뒤에 경기를 치르는 선수들은 첫 메달에 대한 부담을 덜고 더 좋은 성적을 낼 수도 있다. 반대로 이승훈의 결과가 나쁘다면 부담으로 이어져 줄줄이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있다.
이번 소치올림픽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선수단(선수 71명·임원 49명)을 파견하는 한국은 메달 12개(금 4·은 5·동 3)를 수확, 2006년 토리노대회와 2010년 밴쿠버대회에 이어 3회 연속 `톱10 진입`이라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한국의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이승훈을 비롯해 이상화(25·서울시청)·모태범(25·대한항공) `빙속 3인방`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들의 활약 여부에 따라 한국의 순위가 달라질 수 있다.
이승훈은 결전의 땅 소치로 오기 전 네덜란드 헤렌벤에서의 전지 훈련 기간 중 네덜란드 국가대표와의 비공식 대회를 통해 컨디션을 점검했다.
3000m에서 올림픽에서 경쟁을 펼칠 최강자 스벤 크라머(28·네덜란드)와 맞대결을 펼쳐 2위를 기록했다. 정상 컨디션이 아님을 감안할 때 나쁘지 않은 기록을 내 기대감을 남겼다.
그 역시 5000m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이승훈은 지난달 15일 열린 빙상 국가대표 선수단 미디어데이에서 "첫 경기인 5000m는 첫 단추를 잘 꿴다는 의미로 개인과 한국 선수단 모두에 굉장히 중요한 경기"라며 "5000m에 최대한 모든 것을 쏟아붓고 싶다"고 강한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특히 5000m는 4년 전 밴쿠버대회에서 은메달에 그쳤던 종목으로 설욕의 의미가 있다. 그는 4년 전 5000m에서 크라머에게 2초35 뒤져 금메달을 놓쳤다.
첫 5000m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여세를 몰아 1만m의 메달 색깔도 바꿀 수 있다. 이승훈은 밴쿠버대회 때 크라머의 실수로 1만m에서 깜짝 금메달을 차지했지만 같은 실수를 기대하기 힘들다. 금메달이 녹록지 않다.
크라머는 세계올라운드선수권대회에서 6차례(2007~2010년·2012~2013년) 정상에 섰다. 올 시즌 월드컵 1·2차 대회 5000m, 3차 대회 1만m에서 거푸 금메달을 수확하며 최강자의 면모를 한껏 과시했다.
이승훈은 크라머와의 실력차를 인정하며 1만m 목표를 메달 획득으로 잡았다.
이승훈이 개인 종목 메달과 함께 욕심을 내는 것은 팀 추월이다. 이승훈은 김철민(22), 주형준(22·이상 한국체대)과 함께 팀 추월에 나선다.
한국 팀추월대표팀을 이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승훈은 "내가 크라머를 이기는 것보다 팀추월대표팀이 네덜란드를 제칠 가능성이 더 높다"며 희망을 그리고 있다.
이승훈과 함께 팀 추월에 나서는 김철민과 주형준은 모두 쇼트트랙에서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한 선수들이다.
세 명 모두 쇼트트랙 선수 출신이어서 여러 명이 함께 빙판을 도는 것에 익숙하고, 호흡을 맞추는 것도 습관이 들어있다. 이것이 대표팀의 강점으로 작용, 개개인이 가진 실력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다.
올 시즌 월드컵 1·2차 대회에서 동메달을 목에 건 한국대표팀은 4차 대회에서는 은메달을 따내며 최강국 네덜란드를 위협했다.
소치동계올림픽에서도 충분히 메달을 노려볼 만하다.
이승훈이 팀 추월에서도 메달을 목에 건다면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 뿐 아니라 팀 추월에서도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된다.
2006년 토리노동계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팀 추월에서 아시아 국가가 메달을 딴 적은 한 번도 없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의 시작과 끝을 책임질 이승훈의 활약에 팬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