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수리자격증 불법 대여가 판을 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4일 돈을 받고 문화재 기술자 자격증을 빌려준 사람과 이들로부터 자격증을 대여 받은 보수건설업체 대표 등 34명을 문화재 수리 등에 관한 법률 위반혐의로 입건했다. 문화재 수리기술자들은 문화재 보수건설업체에 자격증을 빌려주는 대가로 각각 1100만-3500만 원씩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2008년에는 부여의 한국전통문화대학 학생 6명이 자격증을 업체에 빌려주고 월급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국정감사에서 문제가 된 적도 있었다.
그동안 문화재수리기술자의 90%가량이 자격증을 불법으로 임대해주고 뒷돈을 받는다는 공공연한 소문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자격증 임대료는 단청 분야가 연 1000만-3000만 원, 보수·조경·보존과학 분야는 연 2500만-3000만 원을 월급이나 연봉 형태로 받고 있다고 한다. 보수업체도 마찬가지다. 공사를 수주하지 못한 업체가 일감이 있는 업체에게 자격증을 빌려주고 개당 월 400만 원의 임대료를 받는 게 업계에서는 관행이라고 한다.
자격증 합격자가 배출되는 매년 하반기에는 갑자기 수리업체가 늘어나고, 업체 사이에서는 합격자를 서로 잡으려고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진다는 얘기도 있다. 이런 문화재수리자격증 불법 대여가 관행이라면 숭례문을 비롯해 경주 석굴암, 충남 예산 수덕사 대웅전, 전남 순천 송광사 등 전국의 국보·보물·중요민속문화재 등 수많은 문화재 보수 공사가 무자격자의 손에 의해 이루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무자격 업체가 공사를 실시한 것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것은 이들 공사들이 대부분 부실공사였을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하도급 단계에서 일차로 돈이 깎일 것이고, 자격증 임대료와 이윤을 빼고 난 나머지로 실제 공사를 하는 게 일반적인 점을 감안하면 부실로 이어질 건 뻔하다.
상황이 이 지경까지 된 데에는 감독관청인 문화재청의 책임이 크다. 문화재청은 자격증만 발급할 게 아니라 이제라도 문화재 보수사업을 포함한 문화재 행정 전반에 대해 철저한 실태조사와 제도적인 보완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