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정 / 언론인
언어는 시대의 흐름을 타고 알게 모르게 뜻이 변한다. 언제부터인가 ‘쏘다’는 ‘한턱내다’로, ‘오빠’는 젊은 주부들의 ‘남편’에 대한 호칭으로 통용되고 있다. 초, 중, 고 학생을 뜻하는 ‘초딩, 중딩, 고딩’이라는 인터넷언어는 아예 외계인 말 같다. 머지않아 자유, 민주, 정의 등의 단어에 나쁜 뜻이 추가될지도 모른다.
자유, 민주, 인권, 정의, 진보라는 말을 함부로 입에 담지도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진보를 외치다가 빨갱이로 몰리기도 했다. 군사독재시대에 그랬다. 그럴수록 우리 사회는 자유, 민주, 인권 등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에 더욱 깊은 갈증을 느꼈다.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이룬 나라로 세계의 칭송을 받고 있다. 외국에 나가면 우리의 높아진 위상을 실감한다. 자긍심이 절로 생긴다. 그 배경에는 독재정권에 맞서 싸운 민주세력의 용기와 고귀한 희생도 있었다. 그러나 그 희생이 일부 종교인과 시민단체, 지식인, 노동자, 정치인들에 의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500개에 가까운 온갖 단체들이 경쟁하듯이 그런 짓을 반복하고 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도 그런 집단의 하나다. 그들은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박근혜 씨는 댓글 대통령이다.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고 외쳤다. 작년 11월에도 그랬다. 그들은 북한의 연평도 포격, 천안함 폭침이 우리가 빌미를 제공했기 때문이라는 억지도 부렸다. 댓글사건은 아직도 재판 중이다. 그런데도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씨’라고 호칭하며 끌어내리려 한다. 사제단이 아니라 정치집단 같다. 필요하면 로마 교황도 ‘성하(聖下)’가 아니라 ‘프란치스코 씨’라고 부르고도 남을 신부들인 것 같다.
이제 정의구현사제단, 민주노총, 전교조 등 수많은 단체들은 이름만 들어도 ‘불법행동’이 연상되는 집단이 돼버렸다. 최근 10여년만 돌아보아도 미군장갑차 여중생교통사고를 ‘살인사건’으로 둔갑시키고, 평택미군기지 이전을 결사반대했다. 한미FTA를 광우병 괴담으로 공격했다. 그들의 진짜 목적은 오로지 ‘반미(反美)’였다. 부안 방사성폐기물처리장 건설과 제주해군기지 건설반대에도 앞장섰다. 한진중공업과 쌍용자동차의 노사분규에도 빠지지 않았다. 밀양송전탑 건설 분쟁도 예외가 아니었다. 얼마 전에는 철도노조 불법파업에도 끼어들었다. 그러나 새만금 송전선로 건설 분쟁에는 개입하려다 주민들로부터 거부당했다. 그 문제는 군산 시내 교회 목사들 중재로 타결됐다. 만약 민주세력(?)이 개입했으면 어땠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들은 분쟁과 분규가 있는 곳이면 전국 어디라도 찾아갔다. 가는 곳마다 갈등에 불을 붙여 싸움판을 키우고 불법을 저질렀다. 이해 당사자야 죽든 말든 정치적 목적만 달성하면 그만인 것 같았다. 불법시위가 도심을 마비시키고 시민들을 괴롭히는 것은 예삿일이 돼버렸다. 광우병 시위는 대한민국을 세계적인 웃음거리로 추락시킨 희대의 코미디이자 사기극이었다. 그들은 자유와 인권을 외치면서도 정작 북한 주민의 짓밟힌 인권과 굶주림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비열한 침묵이다. 그들의 이중성은 이미 속살을 드러냈다. 일부 순진한 국민만 속고 이용당할 뿐이다.
정상적인 국민이라면 법과 원칙을 짓밟는 행동을 용납 못한다. 혐오하고 경멸하고 분노한다. 선진사회로 가는 길은 법과 원칙이 살아 있을 때만 열린다. 입으로는 자유, 민주, 인권, 정의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그런 가치를 스스로 짓밟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짓이다. 종교인은 교회나 절로, 노조는 노동 현장으로, 교사는 학교로 각각 제자리를 찾아가 본연의 책무에 충실할 때 대한민국이 정상을 되찾는다. 정부는 불법행위를 단호히 척결해야 한다. 정당한 공권력이 무너지면 대한민국도 무너진다.
마피아(Mafia)도 처음에는 ‘용감한, 큰 뜻을 품은, 남자다운’ 등의 좋은 의미였다고 한다. 마피아가 살인, 마약밀매, 매춘, 불법도박을 일삼는 비밀범죄조직의 대명사로 전락한 것은 불과 150년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한다. 정의구현사제단, 민주노총, 전교조 등 자칭 민주세력들이 불법행동을 멈추지 않는다면 ‘자유, 민주, 인권, 정의, 진보’라는 낱말들도 머지않아 ‘방종, 독선, 불법, 오만, 종북, 빨갱이’ 등의 나쁜 뜻으로 오염될지 모른다. 한진중공업 노사분규 현장에 간 ‘희망버스’가 ‘절망버스’로 전락하듯이 말이다. 요즘은 정의구현사제단을 ‘정의파괴사제단’이라고까지 비웃음거리 삼아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은 이를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