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생도가 2년 연속 수석졸업을 하게 되자 당연히 줘야 할 대통령상을 차석인 남자 생도에게 주려다 화를 부른 공군사관학교와 같은 일이 육군사관학교에서 또 벌어졌다.
이번에는 성적산정 방식을 여생도에게 불리하게 바꾸기로 한 것이다. 이 역시 여생도가 2년 연속 수석을 차지한 이후 나온 조치라 성차별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23일 육군사관학교에 따르면 올해부터 재학생들의 성적산정 방식을 일반학 비중을 낮추고 군사적 능력, 신체적 능력, 훈육 영역 비중을 높이는 방식으로 바꿨다. 두뇌회전이 필요한 분야는 낮추고 체력 등이 필요한 분야의 평가 비중을 높인 것이다.
기존은 일반학 146학점 등 모두 196학점의 성적을 단순 합산하는 `학점제` 방식으로 성적을 산정했다. 백분위 비율로 보면 일반학 73%, 군사역량 14%, 신체역량 3%다.
하지만 이번에 육사가 변경한 성적산출 방식은 백분위 비율로 따져 각 분야별로 가중치를 변경한 것이다. 지적 능력, 군사적 능력, 신체적 능력, 훈육 영역별로 5대3대2대2의 가중치를 적용하기로 했다.
이를 백분위로 보면 지적능력(일반학) 비중은 기존 73%에서 42%로 낮아졌지만 군사학·군사능력은 12%→25%, 체육은 3%→17%, 훈육은 10%→17%로 각각 성적 반영 비중이 높아졌다.
특히 육사가 졸업을 앞둔 지난 달 성적산출 방식을 변경하면서 졸업을 앞둔 여생도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육사가 졸업을 앞둔 70기 생도부터 새 방식을 적용하려 했기 때문이다. 여생도들은 4년 동안 기존 평가기준에 따라 성적을 관리해 온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며 강하게 불만을 제기했다. 이에 부담을 느낀 육사는 내년 졸업자부터 적용하기로 한 발 물러섰다.
육사 관계자는 "올해 졸업생부터 개선된 성적산정 방식을 바로 적용하는 것은 2013년 이전 성적까지 영향을 줘 졸업순위 변동 등 문제가 발생한다는 의견이 있었다"며 "이에 따라 올해 졸업생인 70기에게는 모두 기존 학점제 평가방식을 적용키로 했다"고 해명했다.
육사는 이에 따라 재학생은 지난해 성적까지 기존방식을 적용하고, 올해부터는 새로 개선된 성적산정 방식을 적용하기로 했다.
이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전체 정원의 10분의 1에 불과한 여생도들의 일반학 성적이 남생도보다 월등히 좋기 때문이다. 이번에 성적산정 방식을 바꾸기로 한 것을 두고 성차별 논란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체력 등에서 월등히 앞서는 남생도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육사가 졸업성적에 민감한 이유는 군번에서도 드러난다. 육사는 졸업성적에 따라 군번의 끝자리를 `001, 002` 순으로 부여하고 있다. 군인으로 복무하는 내내 몇 등으로 졸업했는지 금세 알 수 있어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여성이 수석을 하는 것이 육사가 가진 남성중심 문화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라는 말이다.
육사가 갑작스레 성적산출 방식을 바꾸고 뜬금없이 이번 졸업생부터 적용하겠다고 나선 것도 여생도의 약진을 보는 불편한 시각 때문이다. `금녀의 영역`이었던 군대에 여성이 발 디딘 지 얼마 되지 않아 남성들을 압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존 성적산출방식이 적용됐던 2012년과 2013년에는 2년 연속 여생도가 수석 졸업했다. 하지만 이번에 변경한 방식을 적용하면 올해 차석을 차지한 여생도는 4위에 그친다. 졸업성적 1∼7위자에 주는 우등상 수상자도 기존 3명에서 1명으로 줄어든다.
이에 대해 육사 관계자는 "성적산정 기준을 개선한 것은 기존 평가체계가 일반학 위주의 반영비율이 과다해 이를 개선하고 육사의 지향 방향인 `지적역량과 군인적 자질을 겸비한 정예장교 육성`의 목표를 강화하기 위해 지난 1년여의 연구과정을 거쳐 시행하게 된 것"이라며 "개선된 군사적 능력과 신체적 능력에 대한 평가방식은 남녀 신체적 차이를 고려한 평가기준이 별도로 있기 때문에 상대적 피해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